100일 간의 글쓰기를 시작하며
아무 글이나 100일 동안 쓸 것입니다. 2018년에 첫 글을 게시하였으니 브런치 작가가 된지 6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주로 일에서 느끼는 점, 미국에서 느끼는 점들을 글로 썼습니다. 저는 제 안에 제가 아주 많은 기분이 들어요. 일하는 나, 친구들과 있는 나, 글을 쓰는 나, 모두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이 각기의 풍선들을 가운데에서 묶어주는 중심의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올해부터는 이것들을 모두 엮어내고 싶어요. 이 모든 페르소나들을 들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정말 알 길이 없어서, 100일간 아주 긴 혼잣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프로젝트 성격으로 발행하고 있는 글들과 다르게 하나의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써보려고 합니다.
# 묻기
저라는 해변의 모래성이 있다고 할 때, 그 모래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가장 바닥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포기할 수 있는 행위를 하나씩 소거해간다고 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남을 것은 ‘묻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해온 인생의 선택들을 돌이켜볼 때에 늘 기준이 되었던 것은, 이 해결되지 않은 호기심을 안고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였습니다. 영원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평생 종종 왓이프를 생각하며 살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너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질문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조만간 긴 후기를 남길 <묻는다는 것>에서는 질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신적 소유욕인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정신적 소유 상태인 앎에 이르는 과정, 그 중간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다. 호기심이 있어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질문이 없다면 지식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그 물건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 없으면 결국 물건을 가질 수 없듯이. 그래서 ‘묻는다는 것’은 정신적 소유욕을 실제의 앎으로 연결하는, 대단히 결정적인(마음의,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고, 행위이고, 실천이다."
지난 몇 주 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그 분들이 궁금한 점을 답해드리는 시간들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길 잃은 기분이 많이 든다고 멘토 분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께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멘토링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사실 본인이 더 알게 되는 점이 많다고 하셨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느껴졌던 그 말이 실제로 다른 분들을 만나기 시작하니까 더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그분들의 질문을 들으며 저도 저 자신에게 질문하기 때문에, 내가 왜 하필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질문하고 질문 받는다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중에 하나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 쓰기
핵심 가치를 찾기 위한 소거법을 거칠 때,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남을 행위는 글쓰기일 것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보다 글을 훨씬 더 많이 씁니다. 제게 글쓰기는 토하기에 가깝습니다. 제가 지나가는 어떤 사건들을 글로써 풀어 써낼 수 있으면 사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우울과 불안과 치기가 글자로써 물리적 형태를 갖게 되면 별 것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의 일기는 감정적 토사물이고, 제가 괴로울 때에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글을 씁니다. 사실 그래서 이 100일간 글쓰기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남은 것이 없을 때까지 다 꺼내서 형체를 부여해보고 싶어요.
정혜윤 작가의 말처럼 문제는 깊이입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느리거나 빠르거나가 아니라 늘 모든 것은 뜨겁거나 차갑거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글은 대체로 늘 뜨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불안을 토하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가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께 닿았고, 정말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랑도 관심도 질책도 들었습니다. 진실하게 쓰니 진실한 답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뜨겁게 느껴져요. 저는 누구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저는 혼자 있을 때 글을 쓰고 그 글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을 해주니, 저는 아마도 살아 있는 평생 글을 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