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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an 15. 2024

관찰하기와 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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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인이 되고 싶은 사람 A를 만났습니다. 서로 좋은 마음으로 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원체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대화의 많은 부분이 질문인데, A는 저에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나한테 질문을 하나도 안하는 거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조금 더 관찰하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발견해내는 것뿐이라고, 원한다면 질문을 더 많이 하겠지만 본인은 말투, 표정, 제스쳐, 물건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사실을 발견해내는 걸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여서, 오 그럴 수도 있는걸까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관찰과 질문에 대한 이 대화가 서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좋은 타이밍에 너머학교에서 발행한 <묻는다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각기관은 일단 ‘무정형’의 자극, 즉 무엇이라고 확정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고, 우리의 두뇌가 그 자극 가운데 특정한 것을 골라내어 ‘정형의(구체적인 형태와 의미를 갖춘)’ 정보로 바꾼다.

관찰은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감각 기관을 열어서 그 사람 주변의 모든 것을 보고 냄새를 맡고 느끼는 것이죠. 그 자체로 적극적인 개입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왜 이렇게 손톱을 뜯는지, 왜 이렇게 늘 강박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려고 하는지, 왜 늦는 것에 그렇게 민감한지는 묻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묻는다는 것’은 최초의 우리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다. 즉 땅 밑에 묻혀 있지 않고 땅 위로 올라와 두 발로 디디고 서서 멀리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움직여 가는 일이다. 이런 움직임은 동물인 우리를 움직이게 해 주는 ‘욕망’의 일종인 호기심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욕망은 ‘물질적인 소유욕’이 아닌 ‘정신적인 소유욕’이다. 앎은 우리 마음에 이미 주어진 ‘헌 것’과는 다른, 아직 주어지지 않은 ‘새것’을 발견하여 마침내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애정을 키운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아가 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신적 소유욕이 자라남을 의미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탐색에는 필연적으로 질문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친구의 말을 그냥 그런가 보다며(무관심하게) 넘기거나(의심 없이)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친구의 말에서 어딘가 어긋난 구석이 있음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적절한 물음을 통해 짚어 줌으로써, 대화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 ... 묻는다는 건 이런 위화감, 즉 다름과 어긋남을 감지하는 것이며, 그렇게 된 이유를 찾는 일이다. ... 우리는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궁금해하는 존재’이고 그런 궁금증을 ‘질문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더 나아지는 존재’다.

관찰은 위화감을 끄집어내는, 말하자면 농사를 짓기 전에 밭을 가는 일이겠죠. 그렇지만 그 위화감을 탐색하고 해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는 사람이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저에게 질문해주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됐습니다. ‘넓혀 가는 질문’으로 확실한 것을 불확실한 것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것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제 세계를 더 넓혀주는 사람을 제 친구로, 제 파트너로 초대하고 싶다. 이를 통해 대화는 점점 더 열리고, 사고는 점점 더 유연해지며, 지식과 견해의 넓이가 점점 더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대화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관찰과 질문의 근본적 간극, 묻는다는 것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산뜻한 정의와는 별개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제한의 방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속되지 말아야 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사고와 삶을 책임지는 해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속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인생의 어떤 상황을 지나느냐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예속되지 않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이 있습니다.


1. "이때는 이래야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된 인생의 척도

2. 충분히 내가 비판적으로 검증해보지 않은 사회적 규범

3.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

4.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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