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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Feb 11. 2024

2024년의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의 탐구는 여전히 유효한가?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 생각한다. 1세대 여성 작가의 책이 로맨스여야 한다니 어딘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만큼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는 소설도 드물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세대를 몇 번이고 지나도 유효한 지혜다. 나는 둘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오만과 편견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30대의 문 앞에서 발견하고서 그것을 한참 바라본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을 통해 사회적 지위, 자부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입견이 인간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오만은 주로 남자 주인공인 미스터 다아시의 처음 태도와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다아시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른 인물들, 특히 엘리자베스 베넷과 그녀의 가족에 대해 경멸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오만한 행동에 대한 첫인상을 바탕으로 그를 판단하게 되며, 이러한 편견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발전에 장애물이 된다. 오만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과 인간 관계에서의 소통과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결국 미스터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둘 다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개인의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묘사한다. 2024년, 나에게 오만과 편견이란 뭘까? 


오만

사회적 지위, 대인관계, 더 친밀한 연인 관계라는 관점에서 오만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사회적 지위와 재산의 관점: 경멸이라는 것에, 적극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과 태도 뿐 아니라 악의 없는 무지까지 포함한다고 볼 때 나는 오만하다. 나는 내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이미 과대평가된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나를 더 우월하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받은 교육, 다닐 수 있었던 회사, 주어진 기회 등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주기적으로 되뇌이지 않으면 잊게 된다는 점에서 오만하다.


2) 우정과 대인관계의 관점: 나는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주로 반장을 하는 류의 어린이였지만 성인이 되고서는 큰 무리에 잘 섞여들어가는 법은 없었다. 왠지 잘 못 끼어들겠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꽤 많았지만 문제를 일으킬 일은 별로 없이 조용히 잘 지내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향형 인간이지만 사람들에게서 내가 필요한 1) 사회적 지지(우정 등) 2) 사회적 자본(가르침이나 기회 등)을 얻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은 내가 어떠한 인간이냐보다도 그저 아주 운 좋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천운을 타고 나서 그랬던 것이고, 위와 마찬가지로 내가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되뇌이지 않으면 잊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오만이 있는 것 같다.


3) 연애의 관점: 여기에서는 다른 그 어떤 국면보다도 내가 아주 오만한 부분이다. 나는 꽤 안정적인 사람이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꽤 안정적인 연애들만 해왔기 때문에 내가 연애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의사소통 하는지 알고 있고 내 강점을 나는 100% 숨김없이 꽤 잘 정리해서 다 꺼내 보여주는거야!라고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사실 1), 2)에서는 내가 오만한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높이 평가가 전혀 되지 않고, 내가 우월하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경시하기에는 일단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3)에서만큼은 내가 정말 많이 오만하구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편견

나는 편견과 싸우는 사람이었다.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여자, 조용하고 수동적이고 구석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동양인 여자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와는 관계 없이 타인들이 보는 나는 활달하고 상황을 주도하고 자기 의견이 많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내가 아니고자 했던 것들을 그 누구보다도 내재화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인간의 뇌는 부정을 할 수가 없다. 코끼리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편견에 맞서고자 할수록 나는 그것을 내 마음 속 어딘가에 계속 덧대어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나를 볼거야, 나를 다른 동양인/여자/동양인여자처럼 생각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도 나의 모집단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 자신을 공격하는 꼴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결과 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하였다.


자꾸만 깊게 새겨지는 내 모집단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에, 일적으로는 1)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백인 남자 동료들과 진짜 커넥션을 맺고 협력하지 못했으며 2) 기회를 주는 남자 상사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고 3) 배우고 싶은 모습이 많은 동료인데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기도 했고 4)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느라 진정으로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사적으로는 1) 내 전 연인들이 나를 깊이 사랑함에도 내가 여자/동양인/동양인여자로서 겪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화만 내기 바빴고 2)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의 사랑을 이상한 방식으로 시험하려고 했고 3) 그 결과 그들의 사랑으로부터 달아나기 바빴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서, 2024년 최고 작가인 ChatGPT에게 마지막 단락을 써달라고 부탁해봤다. 나의 편견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나는 이제 그것들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타인과 연결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으며 관계를 강화하고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써줬다. 그렇지만 얘가 써준 그 무엇도 사실이 아니라서 여기에 담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제 나의 오만과 편견을 마주 봤으니 언젠가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아가게 되는 날이 오겠지.. 라고 조금 더 차분하고도 헷갈리는 상태임을 밝히며 글을 마무리 한다. 1796년에 쓰인 이 소설에 2024년에도 내가 감화된다는 사실에, 인공지능이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도 18세기의 감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묘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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