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음식은 왜 그토록 소화하기 힘든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결국 제인 에어를 읽게 되는 여자들

by 염전씨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이민 2세 여성의 사랑과 성공을 통해 ‘계급은 어떻게 몸에 남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프린스턴을 졸업한 한국계 미국인 케이시는 월가, 명문대, 부유한 백인 네트워크라는 ‘성공의 경로’ 앞에 서 있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설명하고, 번역하고, 자신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이민자의 계급 이동을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치심, 고립, 도움을 둘러싼 권력, 그리고 침묵의 유산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끝내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민 2세에게 진짜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이번이 두 번째 읽은 건데, 그 전에 읽을 때와는 다르게 2025년에 뉴욕으로 이사를 와서일까 훨씬 더 많은 내용이 더 깊게 와닿았다. 케이시는 93년도에 대학을 졸업했고 나는 93년도에 태어났으니까 나는 케이시 다음 세대의 여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케이시보다 훨씬 많은 걸 이미 가지고 있다. 질문할 언어, 구조를 인식하는 감각,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프레임,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위치. 나는 이건 계급의 문제다, 저건 젠더의 문제다, 이건 이민 세대의 역사다, 이건 구조적 폭력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케이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느낄 수만 있었고, 그걸 몸으로 처리해야 했다. 다음 세대가 된다는 건 더 행복하다는 뜻도 아니고 상처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 차이가 있다. 나는 고통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있는 고통은, 더 이상 완전히 고립되지 않는다. 케이시는 고통을 혼자 견뎠고 나는 고통을 사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saf4n0saf4n0saf4.png 나노바나나가 그려준 인물 포스터... 꽤 그럴듯 하지요..?


등장인물 요약

케이시 한 (주인공): 프린스턴을 졸업한 한국계 이민 2세. 월가라는 상류 사회로의 진입을 갈망하면서도, 자신의 존엄을 깎아 먹는 타협 앞에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현대판 제인 에어'.

리아 & 조셉: 케이시의 부모님. 세탁소를 운영하며 딸의 의대 진학만을 바랐던 이민 1세대. 그들의 침묵과 희생은 케이시에게 자부심인 동시에 거대한 부채감의 근원이다.

티나 한: 케이시의 여동생. 언니와 달리 부모님의 기대에 순응하며 의대에 진학한 '착한 딸'이자 정직한 영혼. 케이시가 흔들릴 때 그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는 가장 가까운 지지자다.

제이 커리: 케이시의 오랜 연인이자 백인 주류 사회의 상징. 케이시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복잡한 정체성을 '과잉'으로 느낀다.

테드 & 엘라: 케이시와 대비되는 '이상적인' 아시안 커플. 테드는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야심가로 케이시의 거울 같은 존재이며, 그의 아내 엘라는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결핍을 지닌 인물이다.

은우: 사회적 잣대로는 도박중독자이자 실패자이지만, 타인의 시계가 아닌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는 인물. 케이시가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사빈 & 아이작: 케이시의 상류층 멘토 부부. 사빈은 케이시에게 세련된 취향과 기회를 열어주지만 계급적 우월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이작은 성공한 사업가로서 제이 커리 같은 이들에게 '사다리'를 제공하는 현실적인 권력자다.

휴: 케이시의 동료. 케이시에게 가장 뼈아픈 수치심과 동시에 '경계의 확정'을 선사한다.

-1x-1.webp 90년대 월가에서 Liar’s Poker로 대변되던 살로몬 브라더스의 Trading floor. 이런 곳 어딘가에 공짜 음식이 차려졌을 것. 2003년에 씨티그룹에서 인수


공짜 음식: 권리와 구걸 사이의 리트머스 시험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공짜 음식’은 이 세계가 내 것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잔인한 시험지다. 연봉 일곱 자리의 백만장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접시를 채운다. 그들에게 공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케이시는 공짜 음식 앞에서 늘 머뭇거린다. ‘내가 이걸 받아도 되나? 나중에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불안은 가난이 아니라 ‘확신’의 부재에서 온다. 케이시는 부탁하지 않고 빚지지 않고 호의를 받으면 반드시 갚으려 하고 애매하면 차라리 손해를 본다. 겉으로 보면 “당당함”인데, 서사적으로 보면 불안 관리 전략에 가깝다. 도움을 받는 순간 나는 이 자리에 조건부로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케이시는 공짜 음식 앞에서도, 연줄 앞에서도, 사람의 호의 앞에서도 항상 한 발 물러선다.


이 책에는 케이시를 도와주려는 인물이 크게 둘있다. 하나는 케이시의 후견인에 가까운 사빈. 아낌 없이 주는 나무 격인 사빈이 케이시에게 주는 피드백은 늘 비슷하다. “그건 네가 괜히 혼자 짊어지는 거야” 이 말은 어쩌면 위로가 아니라 계급 언어다. 사빈은 도움을 받는 것이 자기 가치를 깎는 일이 아니고 호의를 누리는 것이부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세계에서 속해있다. 그래서 사빈에게 케이시의 태도는 미덕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과잉 긴장으로 보인다. 비슷한 종류의 호의를 제공 받은 제이 커리는 Columbia Business School을 아이작의 도움을 받아 입학하고 돈 많은 일본인 여자와 결혼 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는 계속해서 사다리의 다음 칸으로 전진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업 보조 시절 만난 휴. 휴는 케이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능동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존재인데 그 결말은 좋지 않았다. 휴의 도움은 “능력 보완”이나 “경로 제공”이 아니라 관계적 비대칭 위에 얹힌 소유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휴의 도움에는 항상 이중 구조가 깔려 있다. 겉으로는 후원, 멘토링, 기회 제공의 탈을 쓰고 있었고 안쪽에는 접근권, 친밀감, 우월성의 확인이 있었다. 휴 스스로는 이걸 거래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어” 혹은 “순수한 호의였어” 정도. 케이시는 휴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많은 노력하지 않은 권력”을 갖고 있음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시안 비서 여성이 나오는 포르노, 그리고 휴가 거기에서 나오는 대사를 완벽하게 똑같이 케이시에게 하는 그 경험은 휴의 그 권력이 케이시의 존엄을 깨뜨린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케이시는 더 고립되지만 더 명확해진다. 내가 기계부품처럼 갈아끼울 수 있는 아시아 여자라고 수치심을 느끼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여기 남고 싶지는 않다는 것. 경계의 확정이다.


내 주변에는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게 선의로 가득 찬 피드백을 건넨다. “혼자 짊어질 일이 아니야, 도움을 받아.” 악의가 없고 합리적이고 내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말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도움을 받는 것이 자기 가치를 깎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의 세계와, 도움을 받는 순간 나의 존재가 ‘조건부’가 된다고 믿는 이들의 세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린다. 나에게 ‘스스로 해내는 것’은 고집이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는 생존 전략이다. 누군가는 이를 ‘과잉 긴장’이라 부르지만, 우리 같은 이들에게 그 긴장은 추락을 막는 안전벨트다. 사실 나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merlin_163741104_5578513b-42f6-470e-b561-4032dcdbf078-articleLarge.jpg?quality=75&auto=webp&disable=upscale 사빈이 운영하는 백화점의 모티브로 추측되는 Barneys New York. 2019년 문을 닫았다.


세 남자: 번역, 거울, 그리고 안식처

케이시를 거쳐 간 남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케이시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부모의 언어와 감정을 완전히 공유하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미국 사회에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 나는 이미 형성된 자아를 가지고 이동했고, 선택 이전의 삶을 기억한다. 나는 이미 형성된 자아를 가지고 이동했고, 선택 이전의 삶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케이시의 관계들 중 많은 부분은 그저 관찰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제이와의 관계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도 여전히 유효하게 닿아있다고도 느낀다.


케이시는 살면서 한 번도 한국 남자가 데이트를 신청한 적이 없다. 케이시는 상류 엘리트 공간에 있었고 미국 남성들에게는 ‘이국적’으로 소비되었지만 동족 남성에게는 너무 낯선 계급/태도/언어를 가진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한다. 케이시가 한국 남자에게 거부감이 있었다면 그건 한국 남자 그 자체가 아니라 동족 안에서 요구되는 역할들이었다. 순응, 희생, 자기 욕구에 대한 끊임 없는 설명, 가족의 연장 같은 것들.


제이 커리: 그는 케이시의 과거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공유’할 수 없는 인물이다. 제이는 불완전함을 개인의 선택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세계에 산다. 케이시는 불완전함이 역사·가족·몸에 각인된 세계에 산다. 제이는 인생을 ‘선택의 총합’으로 믿는 사람이다. 노력하면 보상받고 설명하면 이해받고 선의로 말하면 상처는 봉합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케이시는 안다. 어떤 상처는 설명으로 덮이지 않고 어떤 정체성은 선택 이전에 주어지며 어떤 수치심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제이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케이시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번역해야 했다. 자신의 복잡한 세계를 ‘과잉’으로 취급하며 스스로를 줄여나가는 사랑.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자기 삭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관계는 케이시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완전한 고립을 준다. 케이시와 제이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었다. 케이시는 "다르고" 싶었지만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다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테드: 나는 테드가 케이시의 ‘남성 버전’이라고 느낀다. 둘 다 기를 쓰고 노력하며 상승을 갈망한다. 케이시를 “그녀는 돈 많은 백인 여자처럼 굴고 있었고…”이라며 조롱하는 데에는, 아시아인은 주류의 룰을 믿는 순간 가장 크게 다친다는 것을 경험한 자기 자신에게 다시금 경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테드가 케이시에게 하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아주 거친 말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테드가 엘라를 버릴 때 케이시에게 그토록 설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테드가 엘라라는 완벽한 조건을 버리고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델리아를 택했을 때, 그는 비로소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나’라는 자기 연출을 포기한다. 그것은 케이시와 테드가 도착한 같은 지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 정직해지는 것.


은우: 은우는 ‘루저’로 보이지만, 실은 시장의 시계와 타인의 기준을 거부한 유일한 인물이다. 은우는 시장의 시계를 거부한 사람이고 조직의 분기표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며 자기 회복의 시간을 타인의 성과 기준에 맞추지 않기로 했다. 사회적으로는 정체된 것처럼 보이고 경제적으로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도박중독자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 자기 리듬을 지키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케이시가 은우를 택한 건 현실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기 존엄’의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은우는 그녀에게 보호자 서사를 강요하지도, 성공으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압박하지도 않는다.

ELMHURST-articleLarge.jpg?quality=75&auto=webp&disable=upscale 작중 케이시 가족이 사는 Elmhurst, Queens .7번 전철의 소음 아래, 112개 언어의 이민자들이 일일 노동과 잠자리를 맞바꾸며 뉴욕 드림을 유예한다.

리아와 케이시: 침묵을 물려받지 않을 권리

소설 후반부, 리아의 강간 사건은 이 소설이 단순한 계급 상승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리아의 강간은 이민 여성 + 하층 계급 + 남성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 그녀가 선택권이 없는 위치에 있었음을 각인시키는 사건이다. 케이시가 밟고 올라온 화려한 토대 아래에는 리아의 ‘말해지지 않은 고통’이 깔려 있었다. 리아에게 폭력은 감내해야 할 운명이었지만, 케이시는 가해자 찰스를 직접 찾아간다.


그 장면에서 리아의 기록되지 않은 수치심과 무력함이 그래도 다음 세대로 넘어가며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찰스는 자신의 폭력을 구조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착각하며 여전히 설교적이다. 중요한 건 케이시가 이걸 알고도 찾아 간다는 점이다. 리아에게 강간은 말해질 수 없는 일, 심지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감당해야만 했던 일, 선택권이 없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케이시에게 이 대면은 말할지 말지 선택한 일, 갈지 말지 선택한 일, 패배를 전제로 하더라도 주체적으로 서는 행위였다. 폭력은 여전히 처벌되지 않았지만, 폭력을 기억하는 방식은 세대를 넘어 바뀌었다.


케이시의 계급 이동을 영웅 서사로 정리하지 않는다. 케이시는 분명 더 많은 기회를 얻었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으며 어머니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를 가진다. 하지만 그 모든 위에는 말해지지 않은 폭력의 토대가 깔려 있다. 케이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지워주지 못하고 정의를 실현하지도 못하며 세계를 바로잡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를 얻는다. 침묵을 물려받지 않을 권리.

bauman-rare-books-02.jpeg?quality=75&strip=all&w=1200 케이시가 제인 에어를 샀을 법한 희귀서적 전문넘


우리 모두는 결국 ‘제인 에어’

케이시가 본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을 알아봐준 책방 주인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책벌레 아가씨들은 모두 ‘제인 에어’의 후예들이다. 나 역시 나의 선택과 노력으로 인생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제이 커리 같은 면모를 가졌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늘 로체스터를 떠나 자기 존엄을 지켰던 제인 에어를 품고 산다.


케이시는 “나는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내려놓았고, 테드는 “나는 항상 옳다”는 환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이들을 향한 내 시선을 점검한다.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계급적 도구일 수 있음을, 하지만 동시에 그 언어만이 우리를 고립에서 구해낼 수 있음을 믿는다.


케이시가 사빈의 호의를 거절하고 먼 길을 돌아갔듯, 나는 많은 일에서 높은 벽 앞에서 비효율적이고 느린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영주권도, 회사 일도... 하지만 그것은 미련함이 아니라, 나의 ‘공짜 음식’을 내 손으로 차리기 위한 투쟁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더 멀리 오래 가려면 이게 최선일까?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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