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에 취약한가에 대한 고찰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나무 사이를 거닌다. 움츠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날씨가 마냥 고맙다. 공기오염은 한국에서는 디폴트값인 것 같다. 얼마나 나쁘냐 덜 나쁘냐의 차이뿐.
직장을 그만두고, 상담심리공부를 하며 의기소침해지고, 어깨에 힘이 빠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라앉은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나를 속박하던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삶은 충만해질거라고, 더 이상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기대 때문이다. 내가 돈을 포기했는데 그러면 마음의 평화 정도는 와야 하는 거 아냐? 라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마음을 따라 공부하고자 했던 결심은, 계산기를 버리고 살자는 것 아니었나?
삶을 택했던 나는 여전히 유능해야 하고, 전망이 있어야 했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려는 마음 중, 정말 내가 이 학문에 전념하고 싶다, 라는 순수한 의도는 몇 퍼센트였을까? 이 질문에 솔직해 지지 않으면 왠지 다음 인생의 결정도 휩쓸리듯이 할 것 같다.
나는 남에게 평가되어지는 모습에 예민하고, 하지만 반대급부적으로 내 마음의 독특한 색을 발견하고 이를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강하다. 이 두 마음은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메세지를 각각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나는 이미지화하고, 이 틀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좋은 피부와 머리결, 날씬한 몸매, 패셔너블한 모습. 그러면서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 지금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 살고 있지만, 결코 현실적인 능력이 없지 않은 사람(혹은 그것을 필살기처럼 감추고 있는 고수의 냄새?!) 비싼 학비를 내며 공부를 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 깊이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학문을 탐구하고 학자로서도 활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 겉으로는 겸손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는 나의 능력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는 사람.
쓰면서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나의 위선적인 마음을 마주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물어야 할 때도 온 것이다.
넌 정말 무엇을 원하니?
옛동료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점심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오후에 시간을 낼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거절을 했다. 여기까지가 팩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흙탕물이 일었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자고 나에게는 오퍼를 주지 않은 회사에 대한 서러움과 나의 능력에 대한 의심(사실은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이 알고 있고 그들은 이를 존중하고 있다) 이제 나 혼자 돈을 못 버는 건가,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 비참함, 혼자서 책상에서 쓰고 읽는 것을 반복해도 글을 잘 쓰고 상담사로 활동을 못하고 돈만 쓰다가 비실비실 사라지면 나는 새된건가. 이래서 다들 아등바등 안 그만두고 버티는 건가!
마음으로 울었다. 나는 나를 무엇으로 보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내 마음인데 나는 직접 들여다보는 것을 이토록 피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남의 인정을 못 받고 돈을 못 벌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얼마전까지 연이 닿았던 상담코칭센터에서 타이틀로 상담사를 보면 돈벌긴 글렀다는 혹평도 그래서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이었다. 좋아하는 분야에 전념을 해야 그 다음이 보이는데, 좋아보이는 것을 하려다보니 흥미도 유지가 안되는 나의 현실을 꼬집힌 것이었다. 사실 맥락적인 팩트는 내가 그쪽에서 오퍼를 준 일을 거절했고, 약간 거기에 보복성 언사로 험하게 평을 한 부분도 분명 있었는데, 나는 이게 남탓을 해야 하는지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지 그 선이 헷갈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기준을 항상 분명히 세우지 않고, 좋다고 하는 길로 언제든 방향을 틀려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맞다. 그러면 인생이 편해진다. 인정받고 돈 잘 벌면 존재의 고민을 왜 하겠나.
하지만 난 그건 직면의 시기를 계속 미루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정을 못 받아 가슴이 철렁하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기분을 피하지 말고 이제는 뚫어져라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야 솔직하게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내고, 천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생각이 이리저리 안새고 하고 싶은 마음을 등불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 조건에 이끌리게 된다.
이제야 생각이 난다. 대학교 졸업반, 한창 진로고민을 할 때 어느 회사든 취업을 해야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취업재수도 핸디캡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아무회사나 걸려라, 하고 금융권이든 제조업이든 다 넣었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며 생각했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건 너무 나쁘지 않은 환경, 사람들인데
이게 무난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절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조건에 따라 살고 내 기준은 전혀 없는 놈이라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나같은 성격이 회사에서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융화도 잘되고 성과도 나름 낸다. 문제는 기준 없이 갈팡질팡하며 나는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못되게 굴면 상처도 크다. 내 기준이 없다는 말은 내 여린 부분을 쉽사리 남에게 오픈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것을 이용하라는 메세지도 함께 줄 수 있다.
또 하나는 나에 대한 자각이다. 난 이런 사람이다, 라는 개념은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을 위한 최선을 결정을 하게 도와준다.
이 모든 것이 독고다이로 세상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렌즈로 나 자신을 바라보자는 의미이지, 지금까지의 인생의 궤적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에 대한 느낌도 달라진다. 힘들 때 나를 위한 결정을 하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의 공통된 마음도 이것이다. "내 마음이 뭔지 알려주세요"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는 마음은 단순한 불안에서 조울증과 같은 기분부전을 가지고 있는 상태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물음이다. 내가 왜 우울하지? 왜 불안하지? 이 이유를 알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것이다.
여린 마음이 꽃을 보고 설레이는 것이 너무나 신비롭고, 좋다. 회사에서는 매일 같은 하루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나를 사무치게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아침에 커피 사들고 출근해서 점심에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월급 받으면 다가 아닌 내가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못된 행동의 동기가 궁금하고, 이를 알려 할수록 상처를 받은 일도 많다.
상담심리대학원에는 마음을 궁금해하고 나누는 분위기이기에 이런 부분이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한다. 하지만 더불어 나의 기준 없던 마음에 가짜 기준으로 작동한 세상의 잣대로 좀 세련되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내 속을 또 뒤틀리고, 나는 흔들린다.
나는 누구인가. 아무도 찾지 않아도 마음을 탐구하는 사색가가 되고자 하는가. 돈과 명예같은 조건에서 자유로운, 내가 원하는 가치를 이제는 찾아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