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기 위한 상담심리대학원생의 모험
분명히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생각했다. 가슴이 번뜩이고 뭉클해지는 순간, 어떤 이야기가 나를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는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잔잔한 여운만이 남아있을 뿐, 내가 무엇에 마음이 움직였는데 망각하는 것이다. 이토록 현실이 꿈같이 느껴질 때가 간혹 있다.
아침에 뛰어간 매헌 양재 시민의 숲이다. 이상하게 양재로 가는 길부터 고요하다. 스산한 것과는 다르다. 조용한 것과도 다르다. 다른 영역에 발을 디딘 것처럼, 새로운 기운이 나를 감싸고, 나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혼자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조용히 숲길을 걷는 노부부, 혼자서 철봉을 하는 아저씨 등.
나는 이렇게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어떤 인정도, 승인도, 꾸밈도 필요없는 내 발로 걸어야 내 땀을 흘리며 내가 마시는 이 공기 속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또 아주 특별한 나로 나 자신을 느낀다. 묘한 역설이다.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은 '나의 나약함' 혹은 '무능함'이다. 왜 못된 것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려 했을까? 왜 마음을 주어도 돌아오지 않고, 심지어는 인간관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때문에 왜 나는 마음이 다칠까?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내가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러나 번듯한 명함,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유능함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여윈 듯한 자기관리까지. 겉으로는 손사레를 치지만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 사람이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아침 시간을 원한다면 온전히 즐길 수 있고, 고요의 시간들이 주어짐에 깊이 감사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가면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담심리대학원에 다니면 심리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게 되는데, 특히 실습시간에 많이 들리기 시작하는 부분이 '자기성찰'이다. 자기반성문인지, 자기자각인지 아마 둘다 자기에 대해서 알아야 남의 마음을 다룰 수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나를 알고 싶어서, 참 많이도 헤맸다. 심리상담도 받아봤고, 대상관계이론을 이용해서 나 자신에 대한 레포트도 썼고, 한 심리코칭센터에 내는 자기소개서에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다고 글도 한 편 써서냈다.
하지만 최근 2주일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아직 나는 가면을 벗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우치게 되었다.
첫번째는 수퍼비전이다.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은 1급자격증을 보유한 상위 레벨의 상담사에게 본인이 진행한 상담 내용을 공유하고 이의 진행방향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다. 이번에는 잠실에 위치한 상담센터에 가서 수퍼비전을 받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왜 이렇게 잘하려고 했어요? 그냥 상담내용만 전달해줘도 되는데..." (미소)
잘하려는 마음, 잘 정리해보려는 그 의욕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달이 되고, 오히려 더 복잡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 그냥 잘 쓰면 되는 것이다. 잘 쓰려는 욕심을 쓰면 안되는데, 그것을 붙들고 있다보니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욕심으로 인한 실망도 덤으로 내가 짐으로 지고 있게 되었다.
두번째는 심리워크샵이었다. 겨울방학때 한 상담코칭센터에 가서 신입상담사 면접을 보았다. 이곳은 기존의 심리상담과정과는 다른, 그 센터의 박사님이 만든 심리검사를 사용해서 상담을 한다. 나는 그곳에서 상담사로 활동하려면 해당이론의 과정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워크샵에 참가했던 것이었다.
워크샵은 이론의 창시자인 박사님의 원맨쇼같은 심리해석이 하이라이트였는데, 내 사연이 불려지는 순간 나는 충격적으로 놀랐다. 일단 내가 검사한 결과지를 보면서 내가 육아와 공부, 운동 등 여러가지를 병행하는 것보다 심리상담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상담사가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일갈해 버린 것이다. 나는 상담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런 우매한 고민을 하고 있고, 설사 내가 더 많이 공부한다 한들 그것은 상담사가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이런 사람이 상담을 하면 그 상담소 망한다는 망언까지 덧붙였다. 상담사를 하나의 타이틀, 성취로 보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상담센터마다 고유의 색이 있는데, 이곳은 마음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기쁘고 슬프고 해도 그것 자체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지고 있는 믿음과 기준이 서로 어긋날 때, 이 충돌이 감정이라는 파동으로 이어지고, 감정이 소화되지 않으면 몸으로 간다는 주장을 한다.
문제는 이 이론을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독단적이다. 이 센터는 작은 교회처럼 한명의 리더가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이것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존재할 수 있는 위험한 구석이 있다.
적잖이 놀랐지만, 동시에 앞의 수퍼비전 일화와 함께 누구보다 껍데기를 중요시했던 나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은 하나의 수확이다. 왜 내가 속물같이 보이는 사람들을 불편해했는지, 남편이 세속적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뭐라고 하면서도 사실 내가 더 외양에 집착했던 거다.
날씬해진다고 먹을 것을 조정하면서도 먹방을 보고, 잘 꾸미며 다니는 다른 여자들을 보고 속으로 품평도 적잖히했다. 어떤 동네에 살고 싶고, 어느 정도는 먹고 입어야 한다는 조건이 꽤나 빡빡했다. 다 그런 기준이 있다고 쳐도, 그 기준 속에 우리는 행복한가. 나는 불행했다.
남들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던 나를 인정하고 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 속물적인, 겉치레를 못 버리는 나를 인정하고 내 삶을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런척 하면서 아무리 내 마음을 알려해도, 중심을 외면하고 뱅뱅 돌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보는 순간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도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두렵다. 상담사로 자격증을 못따고 허송세월했을까봐, 수업시간의 누구에게 밉보였을까봐, 뚱뚱해질까봐, 못생겨질까봐, 돈도 없을까봐. 이런 생각들로 정작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 나를 못 본 거다. 조건이 삶을 이룬다 생각하지만 내 하루는 한땀한땀 몇 분의 노력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특히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으로 공부하기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내가 하는 일을 의미있게 만들 수가 있다.
전쟁을 하며 스포츠센터에 신제품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아무 일도 없이 정책을 논의하는 세상이다. 그저 필부는 이런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마음이 구조라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다. 폄하받아 찌그러진 마음에 대해 잊고 넘어감으로서 복수하련다. 나누고 사랑함으로서 사람은, 마음으 연대해야 한다. 지적하고, 폄하함으로서 세를 모아 부를 축적하는 이들이 많다. 사랑이 느껴지는 이들을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멀리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