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준 삶의 인식의 재전환기, 그리고 미국행
코로나로 인해 나는 졸지에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랩탑을 보내주었고, 원격으로 가동할 수 있는 전화를 설치하라는 연락을 해왔으며, 평소 직접 서명을 받던 서류들은 전자결재로 탈바꿈했다. 사람이 없어도 일을 해야 했으니 꽤나 과감한 변화였다. 이런 뜻밖의 재난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서명에 스캔에 복사에... 반복적, 기계적인 일들을 계속했었을거다.
아무리 혼자 골똘히 생각해도 답이 없다가 한순간의 바깥외출이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있다. 재택근무가 가져다 준 통근시간의 부재가 나를 밖으로 나가 흙을 밟게 했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흙바닥으로 바뀌는 그 순간 삶의 다른 차원이 펼쳐진다. 조바심내고 동동거리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 풀숲에서 피하고 싶던 삶의 과제를 마주한다.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침산책에서는 항상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평화의 마음이 일었다. 괜찮다고, 이렇게 하나하나 밟아가는 거라고, 그냥 나 자신이어도 괜찮다고. 답답했다가도 몇초간, 일을 쉬어도 된다는 마음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일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그즈음, 아이 친구 엄마가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하고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20년전 나의 전공인 심리학이 생각났다. 나의 학부 시절에는 상담관련 교수님이 아예 안 계셨고, 따라서 상담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남의 삶의 얘기를 듣고 그가 마음이 나아지는 일을 돕는 일이 재미가 있겠다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이 생겼고, 나답게 금방 그 호기심을 탐구하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헐렁헐렁한 나였지만 오랜 사회생활은 나에게 준비성과 인내력을 키워주었다. 차근차근 입학을 도와주는 네이버카페에 가입을 하고, 모교에 새로 부임하신 상담심리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했으며 회사일도 소홀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저글링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상담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담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았네? 라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고, 호기심을 키워나갔다. 이미 상담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은 수입을 기대하지 않으면 만족도가 높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대학원 입학 준비를 하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입학을 하면 그제야 강의시간에 교수님들이 공통적으로 '상담심리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초년생인 내가 느끼는 바로는 아래와 같다.
1. 국가공인자격증이 없다. 현재 널리 인정받는 자격증은 학회주관 발급으로, 한국상담심리학회 그리고 한국상담학회 두 곳이다. 허나 국가공인이 아니라는 말은 상담사의 지위가 법제화되지 않았으며 누구나 자격증 유무없이 상담소를 개업할 수 있다.
2. 학회자격을 따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꽤나 소요된다. 내가 원하는 진로를 추구하고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의 투자는 당연하다. 자격을 따기 위해서는 상담경험이 필요하며 자신의 상담을 공인된 상담사에게 수퍼비전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 내가 상담 실력이 초보이니 시급을 적게 받는다,가 아니라 공짜로 상담해주고 수퍼비전으로 돈도 내야 한다. 다른 산업에서 일해본 자라면 모두 생소한 구조이다. 학회 자격증은 2급, 1급이 있는데 1급을 따려면 적어도 5년간의 수련기간이 요구되고 그 기간동안 직업안정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3. 대학원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곳에서도 상담사가 되기 위한 그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인적 네트워크를 얻고,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지만 보장된 것이 없는 교육기간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시간을 쪼개어 한자라도 공부하고 수련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상담 고유의 특성인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상담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한 인간의 고민과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는 일,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다른 상담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때의 그 분위기가 아늑하고 또 정서적이기에 특유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막상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상담센터의 일원이 되었을 때의 분위기는 아직 모른다. 지금은 돈을 안 벌기에 잘해야한다는 부담이 덜하고, 버는 돈이 없으니 아니다 싶으면 그만하지뭐, 라는 퇴로가 있어서 긍정회로를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망설임끝에 다녀본 대학원. 한학기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심리학 이론을 공부하고 이를 삶에 적용시키기 위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도반같은 동기들을 만났고, 수련을 시작해서 내담자들이 생겼으며 우연히 연이 닿은 심리상담코칭센터에서 출판작업을 돕게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상담사의 진로는 자신에게 많은 부분이 달려있다고 느꼈다. 자격증이 생기면 진로가 열리겠지, 라는 나의 기존의 관념을 깨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공부해나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기여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 나가보는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 짜놓은 업무분장에 나를 끼워 맞추려면 내 것이 아니니 잘하기가 힘들다. 나의 것을 만들어나간다는 주인의식으로 내 시간, 경험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힘이 빠지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상담을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과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면 상담사의 길은 유망한 진로가 될 수도 있다. 레드오션, 블루오션이 있다지만, 결국 변하는 시대에 살아남는 가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아닐까? 유망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면 유망하지 않더라도 지속해나갈 수 있기에 결국 그 분야에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음편에서는 지난학기에 있었던 일들과 만났던 이들에 대해서 풀어써보고자 한다. 나의 헤매임과 두드림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