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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un 07. 2023

나에게도 공황이 찾아왔다.

삶을 돌아보고 이 전보다 더 행복한 내가 되었으면..

새벽 4시.. 평범한 하루를 마치고 잠든 무난한 밤이었다.

평소처럼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알람 소리에 맞춰서 눈만 뜨면 계획대로 하루가 시작할 터였다.


유치원의 무한반복 감기전파와 아데노바이러스로 최근 감기를 달고 사는 5살 여자아이의 기침에 눈이 떠졌다. 순간 많은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아이고..우리 애기가 잠도 제대로 못자는 구나.. 잘 자야 나을 텐데... 출산을 100일 앞두고 아이 옆에서 잠을 자는 아내도 계속 잠이 깨겠네..

아.. 곧 있으면 친구들과 3박 4일 40살 기념 여행을 떠나기로 한 시간인데 어쩌지.. 내가 이런 상황에서 가도 되는걸까..


순간 해도 되지 않을 많은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여행가서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주말에 아내랑 아이가 둘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둘째가 태어나면 최소 20년은 계속 일해야 할텐데 계속 지금 필드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AI는 도대체 왜이리 많은 걸 바꾸려고 하는걸까? 기후변화는 어떻하지? 우리 아이들은 이 지구에서 안전할 수있을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걸까? 내가 과연 팀을 이끌고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까?


불안해지고 가만히 있지 못하겠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복통이 생기는등 교감 신경이 활성화 됨을 느꼈다.

한시간 정도 뒤척였고 더는 잠잘 수 없겠다 생각하고 일찍 일어났다. 다행히 최근에 요가를 시작해서 몰입할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으로 얼른 요가원으로 갔다.

한시간 반 동안 몰입해서 요가를 하니 다행히 걱정과 불안히 해소된 듯 했다.


그 날 하루는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평소처럼 퇴근 후 아이와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을 시켰다. 하루가 일찍 시작한터라 피곤해서 10시 반쯤에 잠이 들은것 같다.

그리고 또 아이의 기침에 잠이 깼다. 시간을 보니 12시 30분 정도 된 것 같다.

새벽에 느꼈던던 불안과 걱정이 또 시작되었고 뒤척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라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좋지? 아직 밤이 너무도 많이 남았는데, 잠을 제대로 못자면 내일 하루 망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좋은 아내와 아이들 두고 놀러 가는게 미안해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히 비행기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 아무래도 공황증세가 좀 있는거 같아..너무 아쉽지만 이번에 나는 가면 안될것 같아.. 아직 그 시간에 잠이들지 않은 친구들은 아쉽지만 건강 신경써라. 정신과 꼭 가봐 진료받고 약먹으면 금방 좋아져. 너무 아쉽지만 건강이 먼저다 등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인지 다행히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전날 새벽, 어제 밤에 느낀 정도의 불안과 각성은 아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고 스스로 자신감과 의욕이 많이 떨어져있음을 느꼈다.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얼른 정신과를 가보기로 했다. 친구들 말로는 정신과 초진을 하는데 예약이 꽉 차서 몇 주는 걸릴 수 있다고 했다.(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 하는구나..)

하지만 내 상태를 이렇게 오랫동안 두면 안되겠다 생각해서 주변의 몇 군데를 검색 후 일단 가보기로 했다.

9시 30분 부터 시작하는데 미리 기다릴 생각으로 9시에 갔다.

다행히 친절한 간호사 분이 예약이 꽉 찼지만 지금 바로 해드릴 수 있을것 같으니 들어오시라고 하셔서 정말 운좋게 진료를 받게 되었다.


깨끗하게 의사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차분히 앉아 계시는 다소 나이가 있으신 의사선생님을 보고 신뢰가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조심스럽게 하셨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내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일, 취미, 가족 등에 대해서 굉장히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성향이 있는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고 아래처럼 말을 했다.


스스로 이상적이고 균형있는 살아가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얻어내려 합니다. 즉 인정을 받으려고 신경쓰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스스로 일정을 정할 수 있을것 같아서요. 

일도 가능하면 몰입해서 재미있게 하려고 몰아가기도 합니다. 능동적으로 해야 회사의 일이 내 일이 될 것 같아서요. 또 업무 뿐만 아니라 소통도 잘해야 하고 전문성도 계속 키워 나가야 하고 등등등

그리고 가족도 어떻게든 육아에 있어서 참여해서 육체적인 부분은 제가 하려고 하고 아이와도 시간을 가능하면 가지려고 합니다.


약 20 ~ 30분 정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문진 표를 작성해 보라고 하셔서 총 5장의 문진표 작성을 했다.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을 해보려고 노력했다.(솔직히 하는게 분명 쉽지 않다.)


얼마 후에 작성된 문진표를 보시더니 불안한 상태가 조금 있는거 같다 다만 큰 문제는 아닌거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늘 긴장되어 있는거 같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저에게 왜 그런거 같냐고 물어보셨다. 그 대답은 매우 술술 나온 것 같다.


대학교때 남들 다하는 식으로 취업하기 싫어서 좋아하는 (스포츠)분야에 푹 빠져보기도 했는데 그 길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자신없는 IT분야에 취업해서 도전하였습니다.(대학교 때까지 정말 컴맹이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운이 좋게 대기업 공채로 합격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도전한 곳에서 잘하려고 열심히 하고 별도로 시간을 내서 학습했습니다.(당시는 야근 + 주말 근무도 너무 당연했었다.) 그리고 대기업에 있어서는 스스로 커리어를 정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도 새로 시작하는 곳, 성장하는 곳, 구조조정등 많은 풍파를 경험하고 지금 최근에 이직해서 새롭게 또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상황에서 계속 생존하려고 하다보니 그런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곰곰히 들어주시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아까 말하고 싶긴 했는데, 지금 해주신 이야기를 들으니 이야기 해야겠네요. 일을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는 건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건 아니죠. 일은 분명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형식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주인의식 주인의식 하는데 모든걸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모든일을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항상 긴장하게 되고 쉴 때도 긴장하게 됩니다. 결국 남들 시선을 많이 신경쓰시는거 같습니다. (여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나중에 기회되면 적어보려고 한다.)"


맞는 말이 었다.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쿨한척 하면서 일하려고 했다. 맡은 일은 확실히 하고 남들보다 빨리 퇴근하려고 했다.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워라벨도 챙기고 일도 잘하려고 했다. 분명 일을 못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비판받는게 두려워서 퇴근하고도 슬랙을 기웃거렸고 일을 온전히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일을 안할때도 항상 일 생각이었고 더 잘하기 위한 압박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일단 그렇게 첫 진료를 마쳤다.

공황증상은 또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을거라고 하셨다.

일주일 약을 처방해주셨고 혹시나 공황증상이 나오면 먹으라고 신경안정제 처방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후련하지는 않았다. 나도 계속 느끼고 있던 나의 모습이었다.

가족과 있을때도 일 걱정을 하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로 항상 머릿속이 차 있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잦은 이직과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지 항상 긴장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이런 생각에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최근 이직 후에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고 자신감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걸 너무 진지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취미도 쉽지 않은 것들로.. 분명 내가 하고 싶어서 한것은 맞는데 꼭 그런것 같지않아 보였다.


갑자기 모든게 두려웠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다잡고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불안이 언제 갑자기 찾아올 지 두렵다.

이 과정을 잘 기록하고 이 전보다 더 행복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 질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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