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늦깎이 유학생의 애환
프랑스에 와서 정착한 지 만 4년째 되던 지난 9월, 나는 정식으로 프랑스 국립대학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그것도 1학년으로.
작년에 세 개의 대학에 2학년 편입학으로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다 떨어지고 나서 올해 1학년으로 다시 지원한 뒤에야 겨우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에서 합격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성장 과정과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자면 산전수전까지는 아니어도 장편 드라마 한 편 정도는 찍었기에(물론 어느 인생인들 안 그렇겠냐만은), 그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며 이해하고 해석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해하고 성숙한 만큼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나를 늦은 나이에 다시 심리학 공부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기다림 끝에,
합격 소식이 마치 기적처럼 날아들었다.
뛸 듯이 기뻤던 그 마음도 잠시,
거의 20년 차이가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전히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의 꿈은 아득하기만 한 현실을 딛고 그렇게 다시 학부 생활을 시작한 나의 매일은,말그대로 뒤뚱거림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어로 듣는 영어 수업에서 나는 영어로 답하라고 하면 프랑스어로 답하고, 프랑스어로 답하라고 하면 영어를 하는 엉뚱한 실수를 연발했고, 생물학 수업에서는 정말 2시간 내내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마음속으로 기도만 하고 있기도 했다. 수업 시간마다 사방에서 친구들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걸 모두 타이핑을 하고 있는 중에 나도 뭐라도 써 보려고 긁적여 보지만 2시간 수업 중에 내가 이해한 것을 다 적어본 들 겨우 고작 열 줄이나 될까 했다.
허허,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태산이 높다 하되 올라 보면 더 높으로되 같은 기분이었다.
아득해져서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할라 치면,
부럽다,라는 소리를 듣기가 일쑤이니 모든 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 그조차 쉽지는 않았다.
그런 날이면 하염없이 걸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설득하며 그러니 걷는 사람이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나를 위로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랬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내 일상, 프랑스 살이와 프랑스 유학이라는 단어는 그저 희극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매일 이리저리 뒤뚱거리며 사람들에게는 실례합니다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무수히 내뱉어야 하고 그로 인해 쭈구리가 되려 하는 나 자신에게는 괜찮아, 조금만 더 가 보자를 속삭여야 했던 날들의 연속은 꼭 매일이 희극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초라한 일상은 비극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다시 2학기,
가만히 나의 한 학기를 돌아보다 깨닫는다.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그 모든 비극들이 가만히 들여다보니 희극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초라함들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그 눈물의 시간들이,
그저 허공에 흩어져버리지 않고 내 속에 켜켜이 쌓여 또 다른 무엇으로 가는 길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같은 그 일상은 더 가까이 더더 가까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어이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초라함들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고 겪었던 그 눈물의 순간들을, 그리고 그 눈물이 선사한 깨달음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아름답게 세공하고 가꾸어 알알이 꿰어 아름다운 희극으로 빚어내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다시 멈추었던 글을 펼쳐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