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억압 사이

꽃처럼 피어날 딸을 위한 선택

by 마리앤느



나에겐 나쁜 습성이 있다.

죄책감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독

나를 위해 무언가 소비할 때 그랬다.

꼭 사치처럼 느껴지곤 했다.

사실상 사치가 아니라

생필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컨대, 계절이 바뀌어서 옷 한 벌을 사려고 해도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었다.

화장품을 사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신발이 있는데,

또 다른 신발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좀 예쁜 옷, 제값 주고 한 벌

사 입고 싶은 마음이 들면

'멈추어라'

내 안에서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럼 화들짝 놀라서 얼른 멈추었다.


목소리에 놀란 것인지

통장잔고에 놀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나는 화들짝 놀라

잠시 누려보고 싶었던

작은 욕구를 쌈짓돈처럼 꼬깃꼬깃 접어

마음속 깊숙이 처박았다.





그런고로 내 옷장에는

입기 편한 옷들만 들어찼다.

나의 죄책감은 주로 가성비와 친한 편이었다.


가성비가 좋은 옷을,

싸고 질 좋고 편안한 옷을,

세일 때 맞춰 구입하면 죄책감이 없이

내 욕구를 잠시나마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니 죄책감이 웬 말인가

어쩐지 뿌듯하기까지 했다.

엄청난 일을 해 낸 듯이,

그렇게 나는 으쓱했다.


그러나 그 으쓱함은 거울 앞에 서면

의심으로 바뀌었고,

예쁘게 옷을 입은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새 슬픔으로 바뀌고는 했다.


새 옷을 사 입었거늘,

왜 이토록이나 초라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나는 이 모든 것이

통장 잔고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나도 돈이 많았으면

이렇게 지지리 궁상이겠냐고

오히려 역정이라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 감정을

진실로 마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에게서 시작되었다.


딸과 아들에게 동일하게 용돈을 주는데,

딸은 결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이 없었다.


아들은 몇 달을 모아 친구들이 다 신는다는

비싼 운동화를 사 신고는

마치 과거 급제라도 한 냥 어깨를 쫘악 피고 걸었다.

그리곤 뭐야, 이것도 별거 없네...

다시 평소 신던 브랜드로 미련 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딸은 달랐다.

매달 차곡차곡 모은 그 돈으로

사람들을 챙겼다.

마치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용돈을 받는 사람처럼

그렇게 충실하게 주고 또 주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갖고 싶은 걸 살 때는

움츠러들었다.

기껏 사 봐야 몇 천 원짜리 학용품


티도 나지 않고

기분도 나지 않는

초라한 것을 들고서

괜찮다 했다.


답답했지만

그게 그 아이의 타고난 천성이려니 했다.




그러나 며칠 전 갑자기 딸은 울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도

이야기를 하다가도

하루에도 서너 번 무언가가 복받치면

그렇게 눈물을 훔치곤 했다.


왜?라는 질문에

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 불행한 표정이었다.

무엇이 너의 행복을 앗아간 거니?


속상하고 속상했다.




딸에겐 돈을 많이 써야 해.

예쁘게 해 주어야 한단다...


나의 멘토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억압과 억누름

그로 말미암았던 나의 초라함과 슬픔이

기어이 딸에게로 흘러갔다는 것을.


딸에게만큼은

꽃처럼 예쁘게 자신을 가꾸고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미소 지으며

살아가는 삶을 주고 싶었는데


딸은 내가 주고 싶었던 삶이 아니라

내 목에 드리운 쇠사슬을 함께

받아 목에 걸고 있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제야 엄마가 떠올랐다.

그 흔한 핸드백도 하나 없었던 엄마


가방이라고는

아디다스 스포츠 가방에

다 해어진 원피스 한 벌로 한 계절을 나던 엄마

그러고도 겨울이면 온 가족에게 목도리를 떠서

건네던 따뜻하고 가여웠던 엄마.


엄마가 궁상스레 참으며 내게 준 모든 것이

기회가 되었고

새로운 삶이 되었고

엄마와 다른 삶을 살도록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였을까.

그걸 받아서 더 나은 삶을 사는

내가 싫었고

엄마에게 늘 미안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만 번을 되뇌는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와 다른 길로 가려할 때마다

경종처럼 울리는 죄책감이 자라왔나 보다.


그리고

그 죄책감이

대를 이어

그토록 사랑하는 딸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나 보다.





딸을 데리고 옷가게에 갔다.

필요한 옷 말고

예쁜 옷을 여러 벌 골라서

모녀가 함께 패션쇼를 실컷 했다.


치마를 만지작만지작

사고 싶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딸의 손을 잡아끌어 계산대로 갔다.


입어보기만 하고

다시 걸어놓으려던 내게...

너무 비싼데 하며...

망설이는 마음 앞에


먼저 사슬을 끊은

딸이 말한다.


엄마 괜찮아.

엄마도 이런 옷 입을 수 있어.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렇게 우리는 사이좋게

목에 매인

억압의 굴레를 끊어내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자고,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 주고 아껴주자고,

그러자고 쓰는 돈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아니 설령 그것이 낭비라 할지라도...

그런 낭비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그토록 주고 또 주었던

엄마의 마음은

내가 이렇게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옥죄던 억압으로부터

기어이 한 발짝을 떼어 걸어간다.


억압으로 비워진 결핍 위에

한 움큼 꽃을 뿌리며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러나 그보다 더,

꽃처럼 살아갈 딸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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