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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원 Oct 07. 2022

3. 리포트의 정체는 '주장하는 글'이다

리포트 서론 완성하기



리포트의 서론 완성하기


자, 그럼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서 리포트의 서두를 완성해 보자. 먼저 주제를 정해야 한다.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주제가 자유로운 경우'와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자유주제 리포트


만약 과제가 '자유주제 리포트'라면, 부담없이 자신이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를 주제로 리포트를 써나가면 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식은 살면서 나름대로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주제였던 소재를 고르는 것이다. 지방 농어촌 도시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살면서 본인에게 중요한 문제였던 '농어촌 지역 학생들의 학업 인프라 문제'에 관해 쓰면 된다.


또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해 리포트를 쓸 수도 있다. 아이돌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아이돌 팬덤 문화'에 관해, 모든 OTT 플랫폼을 섭렵해 영화를 수십 편씩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한국 느와르 영화의 폭력성'에 관해 리포트를 쓰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어떤 대상이 너무나도 문제적이라 비판하고 싶은 지점이 많다고 느껴질 때에 리포트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인 페미니즘을 예시로 들자면, 누군가는 '유튜브 썸네일 문화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에 관해, 누군가는 '페미니즘 담론 속 소수자 혐오 발언' 에 관해서 쓰고 싶은 말이 한 트럭 있을 것이다.


주제를 선택하는 원인은 다양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나름대로 중요하게 느꼈다'면 충분하다.



(2) 주제가 정해진 리포트


그런데 만약 리포트의 주제가 큰 틀에서 이미 정해져 있다면? 글쓰기 교양이면 몰라도 대학의 전공 수업에서는 대부분 본인이 강의를 들으며 배운 내용을 어느 정도 토대로 하여 리포트를 쓸 것을 요구하곤 한다. 예컨대 심리학 교양 강좌의 경우 '2030 세대의 행복'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이럴 때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2030 세대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나무위키를 참고하여 그럴듯한 철학자의 말아니 행복의 정의를 몇 가지 조사하고, 다짜고짜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20~30여개의 응답이 찍힌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 그나마 가장 많이 나타난 응답을 골라 '2030 세대의 행복에 관한 인식은 이러이러하더라' 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주위 친구들이 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이런 설문조사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꽤 많이 봐 왔는데,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으로 리포트를 쓴다면 아무리 글이 유려하고 점수를 후하게 줘도 B 이상을 주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렇게 단순히 설문조사나 주변의 인식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는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주제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만의 주제를 구체화해야 한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나만의 '주장'을 만들어야 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주장을 만들라니 무슨 뜻일까?


"교수가 보기에 익숙한 글을 쓰자"는 처음의 다짐을 떠올려 보자. 학술 공동체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은, 사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주장을 맞다고 우기는 일이다. 인문, 사회, 정치, 경제, 과학에서 공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구자들이 동일하다. 사회학자들은 같은 사회 현상을 보고도 서로 자기가 분석한 내용이 맞다고 주장하고, 자연과학자들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이 맞다고 주장한다. 공학자들은 자신이 쓴 방법을 쓰면 더욱 좋다고 주장하고 경제학자들은 미래에 세계 경기가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전부 다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어딜 가나 과격하거나 설득력이 부족해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들조차도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다. 그 논문의 주장이 정말 맞는지는 학계가 논문 인용지수의 형태로 어차피 나중에 평가할 것이기 때문에 학술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나름대로의 근거를 들어 일단 주장하고 본다.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자신의 주장을 맞다고 우기기 위해서 선택적으로 근거를 조합하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맞다고 여기는 바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 조사 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학술 연구에서도 자료 조사를 하고 설문조사를 한다. 그런데 학술 연구에서 설문조사를 하는 이유는 연구자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을 강화하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이지, 설문조사 그 자체를 결론으로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순서가 바뀌었다. 우리는 자료 조사를 하기 전에 자신이 내세울 만한 주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에 맞는 근거를 찾은 것은 나중에 할 일이고, 근거에 관한 것은 이어지는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아까의 심리학 교양 과제에 적용해 보자. '2030의 행복'을 주제로 글을 써야 하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떠오른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친구 누구누구는 참 행복해 보이던데.' 또 인스타그램 속의 나는 행복해 보이는데, 인스타그램을 끄면 실제의 나는 초라해 보인다는 생각도 한다. 갑자기 이 모든 게 인스타그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을 너무 많이 하니까 자꾸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한국 사람들의 비교하는 습성이 문제인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뻗어나갔다면 성공이다. '인스타그램', '비교',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대강 정리되었으니 나의 주장을 구체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주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같은 키워드에서도 여러 가지 주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그만 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은 아무 문제 없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차, 명품, 파인 다이닝 같은 화려한 삶을 홍보하는 게 문제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더라도 소소하게 일상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면 행복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인스타그램 때문에 생긴 건가? 원래도 그랬다. 딱히 인스타그램만의 잘못은 아니다.'


위와 같은 생각을 조금만 다듬으면, 그럴 듯한 주제가 된다. 제목으로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그만 해야 한다.'

-> 인스타그램이 2030 세대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인스타그램은 아무 문제 없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 '셀럽(Celebrity) 문화'의 부작용 : 2030 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인스타그램에 차, 명품, 파인 다이닝 같은 화려한 삶을 홍보하는 게 문제이다.'

->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결합한 SNS의 역기능


'인스타그램을 하더라도 소소하게 일상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면 행복할 수 있다.'

-> 인스타그램의 순기능 : 2030 세대의 '소확행' 문화를 중심으로


'남과 비교하는 것이 인스타그램 때문에 생긴 건가? 원래도 그랬다. 딱히 인스타그램만의 잘못은 아니다.'

-> 인스타그램과 2030 세대의 낮은 자존감의 상관관계에 관한 대중 인식의 오류


어떤가? 같은 키워드로도 전혀 다른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저렇게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교수는 행복과 "관련된" 그 학생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알고 싶어 하지, 학생이 "행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주어진 주제가 있으면 그것을 꼭 제목에 넣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독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이 틀만 깬다면 얼마든지 독창적인 주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 어렵다면 기존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식을 비판해 보자. 역시 충분한 리포트 주제가 될 수 있다. "행복"이라는 주제를 두고 "인스타그램이 2030 세대의 자존감을 낮춘다는 기존 인식에는 오류가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은 현재 2030 세대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이므로, 이와 관련한 기존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라고 그 주제가 중요한 이유를 한 줄로 언급해 주면 된다.


이렇게 동떨어진 주장을 들고 왔을 때 그것을 환영하지 않을 교수는 없다. 교수가 이미 몸담고 있는 학술 공동체에는 이미 너무나도 뜬금없고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 트럭 있기 때문에 학생이 정해진 틀을 조금 벗어나는 정도로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위의 경우에도 "행복"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주제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된다.


주장을 정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그 주제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는 것이고, 이는 자신이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사실과 부정하는 사실이 있다는 뜻이다. 이 다음부터 리포트를 쓰는 것은 그러한 사실 관계를 잘 엮기만 하면 되므로 훨씬 쉽다. 주장을 정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자, 이제 서론을 마무리해보자.




주제의 중요도 밝히기


주장을 정했다면 이제 주제의 중요도를 밝히면 된다. 어렵게 느껴질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참고할 만한 공식을 제시한다.


1. A가 날이 갈수록 문제이다. A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A를 해결하기 위해 B(주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B는 A의 이러이러한 속성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B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현재 B라는 주제는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졌다. 그러나 B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B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B에 관해 많은 사람들은 이러이러하게 생각한다. (대중적 인식) 그러나 이건 틀렸다. 그렇기에 B에 관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중요하다.


대부분은 1번에서와 같이 무엇무엇이 문제라는 식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너무 흔한 유형이므로 굳이 포함하지 않는 것이 더욱 깔끔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2번과 3번에서처럼 "현재 B라는 주제가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졌다"라거나, "B에 관해 많은 사람들은 이러이러하게 생각한다"는 것 역시 나만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려면 그에 맞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나는 B에 관해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만 빼고 다들 이미 중요하게 다루고 있던 화제였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B에 관해 내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내가 주제의 중요도를 강조하려고 마치 사실한 것처럼 언급한 내용들이 사실은 틀린 내용이라면, 전체 리포트의 신뢰도를 훼손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런 문장을 쓸 때는 근거를 더해주어야 한다. 통계 자료를 제시해도 좋고, 뉴스 기사나 책에서 본 전문가의 분석을 언급하는 것도 좋다.


자신의 경험, 혹은 주위 사람들만의 경험을 근거로 들거나, 아예 근거를 대지 않은 채 '현재 2030 세대는 인스타그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라고 쓰는 것은 금물이다. 내가 당장 인스타그램의 영향력에 관해 연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A대 사회학과 교수가 모 기사에서 '2030 세대가 가장 많이 쓰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는 말을 했으면 그 권위에 어느 정도는 의존해도 된다. 그런 근거가 하나둘씩 모여 촘촘한 내 리포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자료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주제(주장)를 명확히 정하고 주제의 중요도를 밝혔다면, 이제부터는 정확한 근거와 치밀한 논리로 내 주장이 맞다고 우겨야 한다. 다음 장에서 근거와 자료를 활용해 나의 주장을 강화해서 좋은 리포트를 쓰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키워드 : 리포트, 리포트 주제, 리포트 서론, 서론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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