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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원 Mar 04. 2023

4. 잘 키운 논리 하나가 본론을 이룬다

목적 없는 자료조사는 이제 그만!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서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밝혔고, 또 그것이 왜 중요한지까지 설명했다면 절반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열과 성을 다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흔히 드는 착각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자료조사를 아주 열심히 해서 많은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고 권위 있는 단체가 비슷한 주장을 한 것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는 통계 자료를 찾아내면 본론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혹은 최대한 많은 표본을 갖는 설문 조사를 한 것이 열심히 레포트를 쓴 것을 방증한다고 여기고, 몇 날 며칠을 사비를 들어가며 주위 지인들에게 설문조사를 돌린다.


하지만 교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외부 단체의 주장, 통계 자료, 주변에서의 설문조사가 과연 이 교수가 학생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있을까?


교수는 누군가의 주장을 검토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교수는 학생 개인의 치밀한 논리를 보고 싶어하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의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근거를 가져올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누가 그랬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밖에 없다. 여기에서 ‘나’라는 존재는 지워진다.




‘나’의 생각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끝내주는 통계,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 언론 보도 자료가 아니다. 본론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잘 짜여진 논리’이다.


‘논리’라는 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물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논리를 보강한다는 것은 그물 위를 걷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이 빠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하려는 주장의 모든 부분을 촘촘히 보완하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이라면 더더욱 이 ‘논리’라는 게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아직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훈련이 충분히 되지 않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는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학술 공동체의 사람들(교수)이라면 모두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도구이다. 논리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니 여기서는 가장 필요한 핵심만 전달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래서 잘 짜여진 논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에 관한 내용을 이제부터 찬찬히 소개할 것이다. 우선 논리학의 두 가지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어떤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은, 주장을 구성하는 근거가 모두 참이라고 전제했을 때 그 주장이 ‘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논리학에서는 “결론의 진리치가 참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일상적인 화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어떤 주장이 ‘건전하다’는 것은, 그 주장이 타당하기도 한데, 주장을 구성하는 근거가 모두 사실이기까지 해서 그 주장이 실제로 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 전공 학생이라면, 통계학에서 타당성과 신뢰성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수 있다. 하지만 논리학에서의 타당성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어느 학문이나 그렇듯이 지나고 보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근거가 모두 참이면 당연히 그 주장이 말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근거가 실제로 모두 참이라니, 그럼 더더욱 좋은 것 아닌가? 이걸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말이 되는 것 같은 주장도 타당성과 건전성을 따져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시를 보자.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육체적인 근력이 약하다. 따라서 남학생들은 학창 시절에 더 많은 이득을 누려 왔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육체적인 근력이 약한가? 이 근거가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는 둘째치고, 근력이 약한 것이 만약 사실이라고 하면 그래서 남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많은 이득을 봤다는 주장이 참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학창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여러 유리한 지위가 육체적인 근력과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증은 타당하지 않은 논증이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육체적인 근력이 약하다. 학창 시절에는 육체적인 근력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린다. 따라서 남학생들은 학창 시절에 더 많은 이득을 누려 왔다.”


이 주장은 어떤가? 아까의 논증에서 한 줄을 추가한 논증이다. 만약 두번째 전제, 즉 학창 시절에 육체적 근력이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남학생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말이 된다”.


이러한 논증 구조는 사실 “A는 B이다. B이면 C이다. 따라서 A는 C이다.”라는 구조를 따르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논증 구조이다. A에 ‘남학생’을, B에 ‘육체적 근력이 더 높은 사람’, C에 ‘학창 시절에 더 많은 이득을 누리는 사람’을 각각 대입하면 명확한 삼단 논법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반박의 여지 없이 타당하다. 물론 이것 말고도 많은 타당한 논증 구조가 존재하며, 전제들이 참이기만 하다면 결론은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위 논증의 결론을 선뜻 인정하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두번째 전제인 ‘학창 시절에는 육체적인 근력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이득을 누린다’는 근거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타당한데 그 전제 중의 하나가 참이 아니라서 수용할 수 없는 논증을 ‘건전하지 못한 논증’이라고 한다.


우리가 레포트를 쓸 때는 “건전한 논증”이 필요하다. 근거들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전제들이 사실이기만 하다면 결론은 자동으로 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설계해야 하고, 또 그 전제들도 실제로 모두 사실이어야 한다. 다음 논증을 보자.


“최근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분류 검사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는 한 개인을 구성하는 성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이분법적인 구분을 강요한다. 따라서 성급한 일반화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위 논증을 분해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성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이분법적인 구분을 강요한다.

이분법적인 구분은 성급한 일반화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성급한 일반화의 문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MBTI가 유행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위 논증은 “성급한 일반화의 문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라는 전제가 숨겨져 있는데, 이를 포함한다고 해도 전제들이 모두 참인 경우 결론이 자연스럽게 참이 된다. 따라서 타당한 논증이며, 동시에 세 전제가 모두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사실이므로 건전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논증에서 다음 문장을 추가해 보자.


“또한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회 풍조는 자칫 다양성을 저해하는 분위기로 이어져서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따라서 MBTI가 유행하는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이때의 전제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회 풍조는 다양성을 저해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다양성을 저해하는 분위기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저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MBTI가 유행하는 현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가? 그럴 듯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뭔가 미심쩍다고 느낄 수도 있다. 다양성을 저해하는 사회 분위기가 과연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하는가? 규칙과 위계질서가 확립된, 획일화된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나름의 효율성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개인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판단이 갈릴 수도 있기에 선뜻 논증이 건전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위의 논증에서 논증의 타당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양성 저해”가 “사회 전체의 효율성 저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히는 근거 한두 줄을 추가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다. 논증에서 나도 모르게 중간 단계를 건너뛰어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 단계를 보완하고, 살을 덧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내용도 풍부해진다.   


사회학자 A의 연구에 따르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에서 전체 생산성이 80% 증가한다고 한다. (학술적/통계적 근거)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과 같다. 돌발적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이야말로 구성원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 근거)


어떤가? 만약 아직도 전체 논리에서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좋은 논증을 구성할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과연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또 ‘구성원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생산성’이라는 지표가 조직의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가?

애초에 여기에서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아직도 중간중간에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레포트를 읽는 이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참고하든, 새로운 논리를 짜내든 해서 이를 좀 더 보강해야 한다.




레포트의 본질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니 그럼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나? 그렇게 치면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이러한 느낌이 들었다면, 레포트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레포트의 본론을 작성한다는 것은 그물망의 느슨한 부분을 찾아내고 천을 덧대어 끊임없이 논리를 보강하는 작업이다. 더 이상은 반론의 여지를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논증을 보강할 때, 비로소 좋은 논증이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지독히 어려운 작업이다. 학술 공동체의 사람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수많은 참고문헌으로 자신의 논리를 보강해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만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하면 된다. 감이 오는가?


방법을 알게 되었어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논리적 허점이 있는지 셀프 점검할 수 있는 공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A가 B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다음의 질문을 적용해 보자.   


과연 A가 B인 게 맞는가?

A라고 해서 반드시 B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A이지만 B가 아닌 경우도 있지 않은가?)

A의 중요한 속성이 B에서도 중요한 속성인 게 맞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연하게 겹쳤을 가능성은 없는가?

사실은 B가 A인데, 인과관계를 혼동한 것은 아닌가?




타인의 주장 반박하기


논증의 타당성과 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되면, 내 논증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논증을 반박해서 다시 내 논증을 강화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국가장학생의 35%만이 여학생인 현실이 문제이며, 따라서 장학생 선발 시험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레포트를 작성하는 사례를 보자.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여학생들의 성적이 남학생들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장학생의 약 35%만이 여학생들이다. 이런 불공평은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장학생 선발 시험이 내재적으로 성적 편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성별과 상관없이 공평해야 하는 장학생 선발 시험이 성적으로 편향적인 것은 분명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국가장학생협회의 여성 대변인 E씨는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시험 성적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 시험을 비난하는 것은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키가 더 크다는 이유로 키를 재는 자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며 이와 같은 주장을 일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E씨는 측정 결과의 차이를 측정 장치에 귀속시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키를 재는 자’는 ‘장학생 선발 시험’에 알맞는 유비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의 경우 그 누가 측정하더라도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측정 결과를 부정할 수 없지만,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면접 등의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되는 경우에는 측정 결과에 충분히 편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인의 주장을 인용하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지적함으로써 나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레포트 한 편을 쓸 때 자신의 주장에 3~4가지의 큰 줄기가 되는 근거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근거를 충분히 찾지 못했다면 해당 주장의 대표적인 반론을 역으로 반박하는 논증을 근거 대신 제시함으로써 나의 주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 애초에 근거를 충분히 찾지 못했다면 내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를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려워도 기죽지 말자


탄탄한 논증을 구축하는 것은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하고, 스스로의 논증이 빈약하다고 느껴져서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논증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썼던 버릇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논증이 빈약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순간 역으로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모든 깨달음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빈약할지언정 탄탄한 논증 구조를 흉내내려고 시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자료조사 결과를 복사해 붙여넣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첫 장에서 우리는 교수에게 익숙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잊지 말자. 이렇게 논증을 쌓아 가는 연습 자체가 학술 공동체의 습관을 체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평가자인 교수는 오히려 이런 글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이 장에서 설명한 내용은 대부분이 연역논리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논증에 더 흥미가 생긴다면, ‘비판적 사고를 위한 논리(아카넷)’와 같은 책을 더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논리적 사고를 체화할수록 스스로의 글과 말이 명료해지고, 탄탄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논증을 탄탄히 구축하였더라도, 이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글을 이루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요소 중 논증이 ‘내용’이라면, 그에 걸맞는 ‘형식’ 역시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주장과 근거를 알맞는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

박혜준 님의 댓글을 보고 용기 내서 시리즈를 다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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