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분위기와 함께 간단한 줄거리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집단농장 노예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모두가 라짜로를 부른다. 라짜로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늘 근심 없는,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 태도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보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인비올라타를 벗어나 도시로 이주했음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난과 착취는 여전히 존재하고,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환경이 바뀌어도 삶의 구조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라짜로는 시간과 현실의 흐름에서 비켜선 듯한 인물이다. 그는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아 있고, 세상만이 앞서 나아간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는 아니다. 그는 그저 착할 뿐이다.
나는 내 시선으로 타인을 쉽게 의심하고 단정해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는 것보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고 여겨온 건 아니었는지도. 라짜로의 눈빛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라짜로의 착함은 누군가를 구원하기보다는, 끝내 아무도 곁에 남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선함은 빛보다 외로움에 가깝다. “성자(聖子)가 현대의 삶 속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이 유난히 서글프게 다가온다. 나는 과연 라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선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보고도 외면하는 쪽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사람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어두움에 이미 적응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또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