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by Jiwon Yun

※ 영화의 주요 장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감상 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영화는 밀양 성폭행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러나 사건의 기억을 거칠게 소환하기보다는, 시를 통해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이 영화가 시를 선택한 태도는 분명하다. 침묵 대신 시로 말하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끝내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섣불리 이해하려 들지 않고, 감정의 속도를 늦춘 채 온전히 느끼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시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미자는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 소녀 앞에서 시선이 멈춘다. 그녀의 상처는 위로 한마디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자는 대신 오래 바라보고, 끝내 그것을 시로 옮긴다. 미자가 지은 시의 제목은 죽은 소녀의 세례명을 딴 ‘아네스의 노래’다.


유서는 섬세하고 그리운 시가 되어 남는다. 이 시는 특정한 누군가만을 향하기보다, 미자 자신에게, 소녀 희진에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안녕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과연 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나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 단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끊어지지 않도록 붓으로 속도감 없이 그려 나가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시에 대한 동경과 믿음을 쉽게 놓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다. 침묵하지 않되 세상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려는 마음을 지키고 싶다.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아네스의 노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