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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킴 Dec 07. 2022

재롱잔치 해피엔딩 가능한가요.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유치원 담임선생님 속이 타들어가는 냄새 말이에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잔치. 코로나로 2년 동안 열리지 않았던 재롱잔치가 코앞이다. GD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아이들은 클럽 인양 무아지경이다. 어린이 대잔치가 열렸으니 주인공들은 흥분의 도가니다.

처음엔 쿵쾅거리는 몸과 마음을 주체 못 하던 아이들은, 곧 몸치냐 박치냐의 기로에 섰다. 친구의 어색한 동작을 다 같이 배꼽 잡고 비웃다가, 창백해진 선생님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연습한 지 2주, 3주 시간이 흘러갔다. 그 쯤엔 의욕이 넘치는 아이가 반, 이제 그만하고 싶은 아이 반. 그랬다.

의욕이 없으니, 오(伍)와 열(列)을 맞추기는커녕 동작을 외우는 것도 어려웠다. 남은 아이가 넷. 이젠 4명만 도와주면 되는 시점이다. 완벽한 재롱잔치를 원하는 것은 선생님보다도 부모님들이다. 무대에서 울거나 주저앉는 아이가, 우리 아이면 안되니까. 아이의 얼굴이 들어간 스티커가 붙은 간식 보따리로,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때로는 전화로 압박이 들어온다. 센터가 누구인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평가해가며 긴장감을 드리운다. 대체 이 잔치를 즐기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궁금해진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주.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선생님을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넘친다.


너는 이제 빠져.

사실 빠져서 갈 데도 없다. 어차피 한 배를 탔고, 내리는 사람은 없는 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은 아이들을 끌고 간야 한다, 하지만 하얗고 아름답고 세상 친절한 선생님은 초강수를 두었다. 어쩌면 무리수였다. 한 번 터진 화는 다시 화를 불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못하겠으면 나가.

내 잘못은 꼭꼭 숨겨도 남의 잘못은 티끌도 감춰줄 생각 없는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이 사태를 알렸다. 영악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을 피해 간 그 비난에 은근슬쩍 안심하며 친구를 동정했다. 일이 커진다.

나처럼 잘하는 애들 빼고 누구누구가 혼이 났다고. 무용담인지 목격담인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곧 날벼락을 맞을 선생님은 생각할 나이가 아니었다.    

  




다음 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노란색 버스가 아이들을 내려준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유치원에는 전화벨이 울렸다. 분노에 찬 J의 엄마는 바로 달려갔다. 새로운 사건이 흥미롭다는 듯. 남 걱정은 자신 있다는 듯이 B유치원 학부모들이 아파트 단지 아래로 모여 J엄마의 염장을 질렀다.

사건 당사자인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묻는 원장 선생님 앞에서 이미 벼락을 맞은듯했고, 이번엔 J엄마의 폭풍 같은 오열을 받아냈다. 선생님은 억울했고, J의 엄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듯 보였다.   

슬픔의 가지에 이유를 달아 무거워지지 말자고 하면 인정머리 없을까?


언젠가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 선생님은 아마도 초임이었다. 의욕은 넘쳤고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마치 22명의 아이들 인생의 키를 쥔 사람처럼 작은 말 하나, 스치는 표정까지도 반응했다. 대단했지만 응원할 수 없었다. 언젠가 번아웃이 오겠지. 아이를 키워본 나는 알았다. 선생님의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지켜보았다. 최고의 선생님 역할에 도취된 병아리 선생님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격려였다.     

살아보니 알게 된 것들 중에. 100번 잘하는 건 소용없다는 진리. 한 번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100번 다 잘하고 또 잘하겠다는 진취적 오만에 갇힌 이는 밉지 않다. 다만 안타까울 뿐.  


맞다, 보석 같은 선생님이 맞았다. 막내의 유치원 마지막 학년에 이런 선생님을 만나다니 행운이었다.     

이번 일이 교사생활의 오점이 될 수도 있겠다. 선생님의 좌절과 후회가 오래갈 수도 있겠다. 교육관 자체를 다시 지어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울 때 하는 말처럼 다시 일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완전무결한 건 세상에 없으니 주눅 들지 말라고.

선생님이 성장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다 지켜봤으니, 자 이제 실수를 인정하고 만회하는 모습까지 보여달라고.  

선생님 편을 든다며 나를 씹어댈 엄마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듯 하지만 말이다.

                     




사진/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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