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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킴 Dec 11. 2022

떨어진 회장 선거도 의미를 남긴다_1

오히려 좋아.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달다.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다. 3학년 때부터 내내 반에서 임원을 맡아오던 아이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은은한 아이보리색 같은 이 아이는 특별히 누구의 눈에 띄거나 말을 잘하거나, 화려한 특기가 있지도 않아서, 학기마다 선거에 나가는 것이 엄마 눈에는 퍽 신기한 일이다. 그래도 이유를 찾자면 진득하고 꾸준하고 성실하다는 것. 요즘 아이 답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잉크에 물에 번지듯이, 봄이 지나 여름이 오듯이 그렇게 하는 일 중의 하나다. 선거의 나가는 것이 말이다.






아침 일찍 방송반으로 모여서 카메라 리허설을 했다. 이미 연습을 많이 했고, 준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긴장은 됐지만 떨지는 않았다는 아이! 기특하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해내기엔 부담이 컸을 텐데도, 일단 뭐든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거두절미하고 선거 결과. 아쉽게도 선거에는 떨어졌다. 너무 씩씩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기에 '아, 됐구나!' 싶었는데, 예상 밖 패배였다고 말하며 과장된 손짓을 한다. 오늘로써 초등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구나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다소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 목소리가 하이톤이다. 

"엄마! 괜찮아~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물기가 느껴진다. 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으니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아이를 불러 꼬~옥 안아주었다.

“괜찮아~ 선거에 떨어져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준비하는 동안 아이가 너무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대견했고 다시 봤다. 함께 선거벽보를 만들며 서로에게 감동하기도 했다. 나의 아들이 너라서, 너는 내가 엄마라서 우리는 좋았다. 떨어질 줄 알았으면 안 나갔을 거야? 아니잖아. 넌 그래도 똑같이 준비했을 거야. 네가 처음 걸을 때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은 것처럼 오늘도 한 걸을 뗀 거지. 그뿐이야. 내 말에 참았던 눈물을 도르륵 흘리는 아이다. "너는 우는 것도 멋지다! “ 내 말에 금세 활짝 웃는다.      

"오늘은 피아노도 치지 말고 계획한 거 다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는 날 할까?"  감정을 추스른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을 빠지고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엄마, 나 사실은, 선거 떨어진 것보다 친구가 한 말이 너무 속상했어. 아침에 날 보자마자 너 떨어질 것 같아. 이건 인기투표고 네가 그 정도로 인기 없잖아!라고 말했거든."        

아이에게는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똘똘하고 차분하고 표현에는 거침없는 친구의 말에 자주 마음에 비수가 꽂혀 들어오곤 했다.

어쩌겠나, 그것도 다 견디고 극복해야지.라고 생각한 게 엄마로서 안일함이었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선거라는 것이, 아이들의 선거라도 말이다.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일 아닌가. 떨어졌으니, 그 친구 말대로 된 거다. 라는 생각 때문에 더 속이 상했던 거다.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 널 잘 모르는데도 너에게 투표한 수십 명의 아이들을 생각해봐. 너무 고맙지 않아?

둘째. 친구는 소중하지만 친구의 모든 말이 다 중요한 건 아냐. 아님 말고식의 말은 그냥 떠다니는 먼지 같은 거야.

셋째. 오늘 너만큼 값진 경험을 가진 친구는 많지 않아. 분명히 앞으로 너의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경험을 너는 해냈어.


살다 보면 내가 최고라고 말해주는 사람보다, 그 반대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아이를 슬프게 한 친구 덕분에 아이와 나는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인생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시험을 100점 맞았다고 자랑해본 적 없어. 그런데 네가 동생들에게 얼마나 멋 진형이고, 노래를 잘하고, 피아노를 잘 치고, 성실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배려심이 깊은지는 항상 자랑거리야. 100가지는 더 말할 수 있어. 넌 앉은자리에서 책을 열 권도 읽는 아이잖아. 너의 깊고 따뜻한 열정과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인생의 숙제란다.     

아이가 자라니, 서로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가 되는가 보다.     

우리는 너무 성공에 베팅하며 살고 있다. 아이에게도 너무 결과를 응원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날이었다. 

적어도 아이와 나는 더 돈독해진 오늘의 선거!

선거에 나가지 않는 게 가장 쉬운 일이잖아, 오늘의 실패를 이겨낸 될성부른 떡잎이 된 너를 응원한다.      



_6학년 전교회장 선거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사진출처/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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