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자기 계발서가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이 우주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신비한 것이 있어서 계속해서 자기가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간절히 바랄수록, 자기 삶에서 원하는 일을 이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남다른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바로 이 끌어당김의 법칙의 신봉자임을 밝혔습니다. 축구의 호날두, MMA에는 코너 맥그리거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처럼 우리도 성공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갖고 살면,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성공이 현실이 될까요?
우리의 삶은 저마다 다르지만, 크게 보면 모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굴곡진 여정입니다. 때때로 상황이 잘 풀리면 우리는 정말 생기 발랄해집니다. 어떤 일이든 다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치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문제는 우리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입니다. 생각도 못한 일들이 내 발목을 잡습니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혹은 나를 둘러싼 환경 때문에 부정적인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면 어느 누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우리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크게 흔들리곤 합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은데 도움을 줄만한 책이 몇 개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사상가는 ‘로고테라피’의 창시자로 유명한 빅토르 프랑클입니다. 프랑클은 나치 유대인 수용소의 생존자로서 일생동안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심리치료사이자 사상가로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환경일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태도를 강조하는 철학을 전개합니다. 그 요지는 삶의 목적이 '의미'를 찾는 것에 있다는 것인데,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마련이고,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힘으로 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맹목적인 게 아니냐라고 반문한다면 정확합니다. 프랑클은 사람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은 어떤 보상, 윤리의 문제이기 이전에 그 자체가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그가 경험했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가 말하길 수용소에서의 고통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수용소가 피해자들에게 주었던 가장 큰 고통은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저마다 지녔던 삶에 대한 희망을 아무렇지 않게 박탈당하는, 일상화된 희망상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때문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삶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클은 의사로서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삶의 물음에 "예"라고 답하라>>는 국내 번역되어 출간된 그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여기에는 그가 상담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수용소에서의 경험,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로고테라피'에 관심이 가는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아마도 <<안나 카레니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톨스토이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곤 하니까요. 이 작품의 이야기는 두 커플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사랑 때문에 겪는 불행과 행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안나 카레니나>>가 이토록 널리 읽히는 이유는 이 소설에 담겨있는 톨스토이의 사회 고찰이 매우 풍부하고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이 작품을 해석하는 시선 역시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챕터를 유별히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습니다. 이 챕터에 바로 오늘 포스팅과 일맥상통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등장하거든요. 삶의 의미가 믿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믿음은 꼭 어떤 종교적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는 믿음이 아니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사정을 깨닫게 됩니다. 밤하늘에 있는 별의 위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몇 시간 전에 바라봤던 별이 지금 내게 보이는 별과 같은 별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물리 법칙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법칙이 알려지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을 믿고, 그것을 삶에 활용해 왔습니다.
삶에는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삶은 완벽하지 않으며, 부주의한 실수와 오류로 점철되어 있기 마련 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자기 삶에 대한 믿음과 더 나은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소설 속 네 명의 주인공들이 겪는 굴곡진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한 주인공의 선의에 가득 찬 이 독백과 함께 끝이 납니다. 혹시 이 소설을 읽어보셨던 분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이 마지막 챕터를 읽어보시면 와닿는 게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한 대목이 있는데요. 루카치라는 철학자가 쓴 '소설의 이론'의 서문입니다. 루카치는 이 책에서 문학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시대에 따른 문학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와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아래 서문은 고대 그리스 시대 개인이 어떻게 세계와 상호작용 했는지를 낭만적 어조로 표현한 대목입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후 십수 년간 망망대해에서의 표류 끝에 고향에 돌아가는 모험담을 그립니다. 당시 망망대해에서의 항해는 밤하늘의 별에 의존해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별이 내가 목표로 하는 곳에 당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간절하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매우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이런 별을 찾는 것은 사정이 많이 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확실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자신이 믿는 목표에 다가가려는 사람의 본성은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우스처럼 밤하늘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배를 나아가게 하는 선원과 같이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우리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