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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01. 2021

청년의 방황과 인생의 길에 대하여


나를 포함하며, 주변의 동생들을 보면 대략 청년의 방황이라는 게 서른을 내외로 찾아오는 것 같다. 대학원을 가든, 회사에 취업을 하든, 스타트업을 만들든 나름대로 인생의 길이라는 것에 접어들긴 했는데, 왠지 이대로 계속 산다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쯤 자기의 길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회사를 3년쯤 다녔거나, 대학원 석사를 수료했거나, 스타트업 차려서 부지런히 투자받으러 뛰어다니는 일에 약간 익숙해질, 그럴 무렵이다. 


그 시기에 사람들의 인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그냥 그대로 계속 버티면서 그 길에 눌러앉는 경우이고, 반대로,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탈출 기회가 없다고 느껴서 박차고 나오는 경우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대부분이 탈출하기도 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대부분이 체념하고 눌러앉기도 한다. 반반쯤 되는 영역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탈출이라고 하기에도, 눌러앉은 경우라고 하기에도 다소 애매한 면이 있었다. 어쨌든, 어느 영역으로부터는 탈출한 게 맞았지만, 그래도 계속 해오던 일을 이어간 측면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신분의 영역, 혹은 사회적 직함이나, 사회적 소속과 업계 같은 것은 꽤나 달라지면서 탈출의 탈출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글쓰기 만큼은 결코 놓지 않았다. 결국 지난 10여년간을 돌아보면, 위기의 서른을 지나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이 세계 저 세계를 탐험하듯이 옷을 갈아입었지만, 글은 계속 썼다. 적어도 글쓰기에는 눌러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던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한 시기에 어떤 영역에서 탈출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인생이라는 건 더 살아봐야 과거의 선택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인생에서 있었던 방향전환이 나름 좋은 선택이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더 살아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두세번쯤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계속 그 영역에 머물렀으면 더 좋은 인생을 살았을지, 아닐지, 사실 신이 아닌 한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확신하는 일은 하나 있다. 그런 와중에도 글쓰기는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기의 서른, 방황의 청춘, 어떤 길이 내 길이어야 하는지 몰라 헤매던 그 시절들을 통과해 오면서도, 나는 끝없이 글을 썼다는 것 만큼은 내가 다시 살아내더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리라는 확신이 들 만큼, 잘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이나 신앙이나 사랑이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방황하느라 허송세월하는 와중에도 매일 운동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매일 기도를 한 건 유일하게 내가 확신하는 일이었다, 그녀를 놓지 않고 처절하게 사랑을 이어온 것만큼은 내 삶에서 유일하게 잘한 것이었다,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사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나에게 삶의 선택에 대해 물어올 때면, 함부로 계속 그곳에서 버텨내라, 아니면 빨리 탈출해라,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다른 모두가 다 탈출할 때, 어떻게든 버티고서 이겨내서 그 업계 내에서 가치있는 것을 얻고 스스로도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빨리 탈출하고 새 길을 찾아 더 멋진 삶을 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 그 대신, 그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 하던 것을 완전히 놓지는 말라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건져내서 이어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내가 쓴 시간을 완전히 저버리기 보다는 그 중 아주 일부라도 남겨서 삶의 끈으로 이어가면서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도전해보라고, 그냥, 나는 그래봤더니 좋더라고, 말한다. 


사람은 삶의 많은 시간을 써서, 배우고, 익히고, 특히, 청년 시절 가장 명징한 두뇌로 시간을 써서 무언가를 체화하고 얻어낸다. 그때 얻은 지식이나 기술 중에 무가치한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업계나 세계에는 미래가 없고 형편없는 환경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마음과 청춘과 시간을 썼던 것들에는 반드시 건져낼 게 있다. 삶의 어떠한 길로 들어서든, 그것들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보낸 시간은 무가치한 것이 아니고, 그 속에는 나를 지켜줄 한 줄의 실오라기는 있고, 그 실 한 줄만큼은 계속 들고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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