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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02. 2023

어머니와 나, 아들

Photo by Xavier Mouton Photographie on Unsplash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어머니는 매우 세련된 사람이었다. 일가친척과 주변 어른들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수동 카메라로 조리개값이나 초점 등을 조절할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사진을 정말 많이 찍어주었고, 어디를 가나 어머니가 사진 담당을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온 뒤에도, 수동 카메라가 사진이 더 잘 나온다면서 한동안 그 옛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나는 특별한 엄마를 가진 아이라고 느꼈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고, 나도 어머니가 가수보다도 노래를 잘한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자주 우리에게 팝송이나 가요를 불러주었다. 나와 여동생은 어머니한테 여러 곡의 팝송을 배웠다. 또 십대 무렵, 내가 좋아한 노래의 절반 이상은 모두 어머니가 알려준 노래였다. 어머니는 노래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나는 역시 특별한 엄마를 가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정말 잘 그려서, 주위에서 어머니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없었다. 도시의 제일 끝자락에 있는 구석진 우리 동네에서, 나는 어머니가 동네 최고의 화가라고 믿었다. 어머니는 그전까지는 그냥 우리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정도였지만, 삼십대 후반쯤, 동네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운 뒤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큰 상을 몇 번 받아 진짜 화가가 되었다. 아마 제대로 된 지원을 받았거나, 경력을 잘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면, 더 유명한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세상에서 운전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주위에서 어머니의 운전 실력을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도 먼저 운전을 했고, 당연히 아버지 보다도 운전을 잘했고, 사고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보복운전을 하겠다며 따라오는 트럭을 고속도로 출구로 유인하여 영화처럼 따돌린 적도 있었다.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어머니의 시중에서 가장 저렴했던 중고차는 우리를 싣고 전국을 누볐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 어머니가 이제 만으로 서른다섯이 된 내 나이였던 때, 나는 중학생쯤 되었다. 나는 그보다 열살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따라부른다. 나는 아이에게 공룡을 어떻게 그리는지 가르치고, 한글을 알려준다. 세상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아이에게 근사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쏘다닌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 내가 어머니보다 잘해내는 것 같지는 않다. 나보다 어렸던 어머니가 더 잘했던 것만 같다. 


이런 어설픈 내가 부모라니 잘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아이에게 삶의 지표가 되어줄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려 애쓴다. 상상하는 법, 그림 그리는 법, 노래를 구별하는 법, 친구와 관계 맺는 법, 책을 좋아하는 법, 약속을 지키는 법,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매일같이 알려준다. 그리고 나도 그 모든 것을 이렇게 배웠구나, 하고 느끼곤 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로 비치게 될지, 고민해보곤 한다. 


나는 이제 겨우 아이랑 4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느끼는데, 정작 아이에게 기억이 될 시간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내가 어떤 기억이 되든, 그 기억이 아이에게 오랜 힘이 되는 기억이었으면 싶다. 따뜻함이든, 당당함이든, 강인함이든, 특별함이든, 그 무언가가 아이의 삶에 작은 표지판 정도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기억으로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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