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의 시대
바야흐로 세상은 인플루언서의 시대가 되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주로 SNS,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 광범위한 팬덤을 보유하며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이러한 영향력을 주로 언론이나 방송에서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1인미디어처럼 활동하는 개개인들에게 그러한 영향력이 분산되었다. 특히, 공중파 방송에 내보내는 광고보다 유튜브에 송출하는 광고, 언론사 지면의 광고보다는 인플루언서 SNS에 하는 광고의 효과가 더 유의미하다는 건 상식처럼 퍼지고 있다. 그에 따라, 기성 방송이 역으로 온라인 상의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현상 등도 이미 보편화 되었다.
인플루언서들이 활동하는 영역에는 제한이 없다. 사실상 모든 영역에 나름의 인플루언서가 있다. 흔히 기존 연예인의 범주에 들었던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뿐만 아니라 작가나 화가 등 예술가, 학자, 에디터, 사업가, 모델, 스튜어디스, 변호사, 의사 등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군에 인플루언서들이 존재한다. 나아가 직업에 한정하지 않고,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육아 인스타그램나 일상 브이로그라든지, 연애, 여행, 먹거리, 홈인테리어에 대한 유튜브 등 우리 삶의 거의 전 영역이 전시되고 있고, 그러한 영역마다 인플루언서들이 탄생하고 있다.
인류학자 정연욱은 인플루언서에 관한 책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에서 인플루언서 유형을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라고 구별하여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물질파’는 일종의 부자들로 끊임없이 명품과 고급 소비문화를 전시하는 이들이다. ‘육체파’는 외모와 몸매를 자랑하면서 그에 대한 관리 비법이나 루틴 등을 공개한다. ‘정신파’는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 이슈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지식인 샐럽이다. 이처럼 인플루언서는 사실상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에 대한 동경도 적지 않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를 보면, 유튜버 등에 해당하는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는 몇 년째 초등학생이 원하는 장래희망 5위 안에 들고 있다. 청년들도 한번쯤은 인플루언서를 꿈꾸며 SNS, 유튜브, 팟캐스트 등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직장인들 또한 퇴근 이후나 주말을 활용하여 온라인에서의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요즘 가장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대박’으로 인생 역전한 인플루언서를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세상은 인플루언서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인플루언서를 꿈꾸거나 부러워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인플루언서가 되어보려고 도전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꿈에 불과했던 인기와 부를 얻는 것도 때론 손만 뻗으면 가능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인플루언서 되기’를 희망하게 하고, 실제로 인플루언서가 되면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인플루언서란 멀리 있지 않다’는 속삭임이 우리 사회 전체에 화이트노이즈처럼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인플루언서에 열광하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이 인플루언서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플루언서도 워낙 다양한 유형이 있다 보니,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이 인플루언서에 어떤 식으로 공감하며, 인플루언서로부터 무엇을 얻는지를 분석해보면 몇 가지 주된 공통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공통점을 세 가지로 추려보면, 재미, 지식, 친근감이다.
우선,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를 구독하고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한다. 대다수 인플루언서들의 특징을 하나 꼽자면 재미없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재미라는 것은 저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박장대소할 만큼 웃기든, 깊은 감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든, 평소에 볼 수 없는 특이함이 있든 우리의 지루한 일상을 흔들어줄 무언가가 그들에겐 있다. 마치 과거에 저마다 재미를 가진 TV 채널이나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챙겨봤듯, 사람들은 각자의 재미에 적중하는 인플루언서를 구독한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인플루언서에게서 지식을 얻는다. 실제로 다양한 지식 자체를 주력으로 하는 유튜브 등도 있지만, 꼭 그런 경우에만 지식이 전달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인플루언서 중에는 ‘부자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부자들은 매일같이 명품 쇼핑을 하고, 호텔 바캉스를 즐기며, 고급 외제차와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을 자랑한다.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에게 열광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 선망도 있겠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지식 또한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가령, 부자들을 팔로우하면 부자들이 요즘 어디를 다니며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누리는 고급 문화를 엿보고 그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과거였다면, 부자들끼리 모이는 골프장이나 사우나에서 얻을 법한 정보들이 부자들의 SNS에 널려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람들은 ‘소비’에 대한 지식을 부자들로부터 얻는다.
사실, 방법만 다를 뿐 과거에도 사람들은 무엇을 소비할지 배우길 원했다. 한때는 그 역할을 TV 광고 속 배우들이 하거나 주변 친구들이 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상의 인플루언서들이 할 뿐이기도 하다. 인플루언서들은 우리가 무엇을 소비해야할지 알려준다. 어떤 패션이 최신 유행인지, 어떤 제품이 요즘 가장 핫한지, 어떤 장소가 아름다운 핫플레이스인지, 어떤 육아 방법이 최근 트렌드인지 등을 인플루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로부터 지식을 배우고, 정보를 얻으며, 그들을 모방한다.
독일의 비평가 볼프강 M. 슈미트는 그의 책 <인플루언서>에서 인플루언서를 ‘스러져가는 자본주의의 구원 투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소비가 없이는 결코 지탱될 수 없다. 일상에서 큰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소비욕망을 불러일으켜야만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 인플루언서는 그런 점에서 사람들에게 소비를 부추기며 무엇을 소비해야할지 알려주는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인플루언서는 과거의 어떤 샐럽들보다 친근하다. 유명인들은 주로 TV 속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마저도 매니지먼트회사 등의 관리로 각종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유명인과 일대일로 대화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의 가까운 일상을 엿보는 건 범죄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자기 일상을 가감없이 노출하고, 직접 계정을 운영하며, 팔로워들과 댓글을 주고 받는다. ‘유명인’이 이토록 가까웠던 시대란 없었다.
여러 이유에서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유명인들과 대화하듯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일은 인플루언서에 대한 열광을 잘 설명해준다. TV 속에만 있는 연예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SNS에 접속하여 인플루언서와 댓글을 주고받는 게 더 강렬하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 없다. 그렇게 인플루언서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그렇게 사람들의 일상 속에 들어간다.
인플루언서 시대의 명과 암
하지만 인플루언서라고 해서 모든 걸 다 가진 영원한 귀족계급이라고 볼 수는 없다. 흔히 사람들의 선입관 속에서 인플루언서는 어렵지 않게 돈을 벌고 명성을 얻으며 모든 것들을 손쉽게 쓸어담는 존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상당수의 인플루언서들이 유명해지기 무섭게 온갖 이유들로 몰락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의 예쁜 사진으로 유명세를 얻어 자신의 쇼핑몰을 차렸다가 고객 응대에 대한 미숙함으로 한 순간에 인기를 잃어버린 인플루언서도 있다. 유명인들을 저격하는 영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가 본인의 치부가 드러나 구독자를 모두 잃은 유튜버도 있다. 정치적 논평으로 유명세를 얻어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여러 비윤리적인 행위로 역공세를 받고 사라진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도 있다. 실제로는 협찬받은 광고이면서도 광고가 아닌 척 제품을 홍보하다가 적발되어 계정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오히려 ‘롱런’하며 안정적으로 부와 인기를 유지하는 인플루언서가 드물 정도이다.
인플루언서의 위치란 지극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해서, 그가 가진 인기가 언제 악명이 될지 알 수 없다. 팬덤들은 마치 공고한 충성 고객처럼 보이다가도, 한 순간 돌아서서 가장 잔인한 안티로 돌변하기도 한다. 쌓아올린 인지도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사업이 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기는 있으나 적절한 수익구조를 창출하지 못해서 허명 뿐인 인플루언서도 많다. 모든 걸 얻은 것처럼 보이는 인플루언서이지만, 실제는 보이는 것과 다른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대중의 인기에 의존하는 인플루언서의 입장에서는 그 변동성에 의한 마음의 고충도 상당하다고 한다. 피드 하나를 잘못 올렸다가 순식간에 팔로워를 잃을 수도 있고, 영상에서 발언 하나 잘못 했다가 구독자들로부터 온갖 악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업로드하는 피드나 영상이 곧 일이고 돈이기 때문에, 쉽사리 그러한 행위를 그만할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인플루언서는 대중으로부터 많은 걸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중에 예속되어 있기도 하다. 그들 또한 모든 이들이 꿈꾸는 ‘자유’랄 것을 완벽하게 얻은 존재는 결코 아닌 것이다.
적어도 과거의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매니지먼트 회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받고, 나름대로 공고한 방송업계와 관계 맺으며 리스크를 줄였다면, 최근의 인플루언서들은 사막에서 혼자 고투하는 독수리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도 등장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인플루언서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여러 리스크들에 노출되어 있다. 가장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불안한 이들이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것이다.
각종 법적 문제들
인플루언서를 둘러싼 각종 법적 문제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건 악플 등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이다. 익명 뒤에 숨어서 인플루언서를 쉽게 평가하거나 조롱하고, 모욕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일부에게 이루어졌던 관심이 각종 인플루언서들에게로 확산되면서, 온갖 곳에서 온갖 사람을 향한 각종 명예훼손 및 모욕 관련 문제들이 발생한다. 최근 법무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법에 ‘인격권’을 명시하는 민법개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하나는 일명 ‘뒷광고’ 문제이다. 뒷광고란, 인플루언서가 각종 SNS나 유튜브 등에 제품을 협찬 받아 업로드하면서도 협찬 사실에 대해 표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단순히 협찬 받는 걸 넘어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광고비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럴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인플루언서를 믿고 구독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만한 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때 뒷광고를 했던 인플루언서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고, 이로 인해 계정을 정지하거나 유튜브 운영 등을 그만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개정된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이 2020. 9. 1.부터 시행되었고 이후부터 뒷광고는 사실상 전면 금지되었다. 그에 따라 SNS 등에는 ‘내돈내산’ 콘텐츠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즉, 이 콘텐츠는 광고나 협찬 등이 아니라 진짜 솔직한 후기를 담은 ‘내 돈으로 내가 산 제품’에 대한 콘텐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뒷광고를 하는 계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계속 이를 둘러싼 법적 문제들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도 저작권 관련 문제는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튜브 등에는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영상이나 음원을 무단으로 편집하여 복제한 후 영상에 포함시키거나 업로드하는 등의 현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직접 찍은 것 외에 타인의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럴 경우 저작권법상 공정한 이용이나 허용되는 인용에 해당하는지 등을 일일이 따져봐야겠지만, 저작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인플루언서들이 인터넷 쇼핑몰을 차리고 자체 디자인으로 영업을 할 때, 해당 제품의 디자인이 기존 다른 업체의 디자인과 유사하여 문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플루언서 중에는 해당 업계의 오랜 베테랑이나 전문가도 있지만, 단순히 빠르게 얻은 인지도를 통해 곧장 현금화를 위한 사업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각종 불법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 셈이다.
우리는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살고 있고, 어쩌면 인플루언서가 될지도 모른다. 인플루언서의 시대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명과 암이 있으며, 다양한 법적인 문제들도 발생할 여지가 존재한다.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그 시대마다의 선망과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인플루언서의 시대에도 그에 맞는 대처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은 '법치와 자유'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