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가 결혼과 육아, 집을 포기하면서 미치는 묘한 영향이 있다. 그것은 경제 전반의 소비 수준이 급격히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200만 원에서 300만 원 가량 버는 청년이 있다고 했을 때, 결혼이나 추후 집 구매를 염두에 두면 100만 원 정도는 저축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폭등한 부동산이 평생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지고, 결혼에 대한 관심도 그만두게 되면, 그 월 100만 원 정도의 추가 소비가 가능할 수 있다.
월 100만 원이란, 엄청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매달 호캉스에 오마카세를 즐기기에 충분한 돈이다. 매년 고가 명품백이나 명품시계를 하나씩 사도 된다. 5-6년에 한 번씩 외제차를 바꿔도 된다. 그런데 이런 소비를 꼭 비합리적인 거라 볼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진 않다. 가령,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매달 나가는 양육비나 교육비가 100만 원은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포기하면, 다른 모든 걸 누려도 된다.
8억쯤 하는 아파트가 싸다고 하는 요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영어 유치원이니 방과 후 학원이니 하는 걸 고민하고, 그러면서 매달 몇 백만원 원리금을 갚으면서 평생 노예로 살다가 나이 50쯤 아파트 하나 얻고 사는 삶이, 그 모든 걸 포기한 삶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볼 수는 없다. 청년들의 선택은 그 나름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데가 있다. 그리고 그 '합리적인' 선택이 우리 문화에 잘 수치로 측정되지는 않지만,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은 앞서 말했듯이 급격히 '상향 평준화'되는 소비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명품이나 외제차에 대한 소비는 우리 나라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어찌되었든 결혼, 육아, 집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나 축적을 그만두면서 일어난 현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화의 문제는, 점점 더 현재의 소비가 극단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더 강한 상대적 박탈감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나 빼고는 다들 골프 치러 다니고, 매년 해외 여행을 떠나고, 한 끼에 10만원씩 한다는 오마카세를 즐기는 것 같고, 도로에는 외제차만 굴러 다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삶은 상류층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굳이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실제 이미지'인 것이다.
이런 실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며 경쟁하는 삶은, 상대적 박탈감 다음에는 철저한 각자도생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삶이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축적하는 과정으로 경험되는 게 아니라, 매순간의 휘발적이고 내일이 없는 소비들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에서는 안정적인 관계도, 온전한 자아 정체성도, 지속적인 삶의 만족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더 '높은' 이미지만을 좇으며 외롭게 경쟁하고 타인들과의 관계를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만 경험하는 세태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아마 요즘 시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삶은 이런 것일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소박하게 삶을 쌓아가면서, 저축하고, 한적한 곳에 작은 집 한 칸 얻고, 아이 둘 키우며 삶의 여생을 보내는 꿈 같은 걸 추구하는 일 말이다. 화려하고 상향 평준화된 소비 이미지를 좇기 보다는, 그야말로 '적당히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 우리 시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대신 우리 시대는 최초의 포기(결혼, 육아, 보금자리의 불가능성) 이후, 그 자리를 메우는 화려한 이미지에 대한 갈망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이런 갈망이 문화와 사회, 경제, 소비 등 모든 것들을 결정짓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특히 삶의 차원에서든, 사회의 차원에서든 '미래'라고 부를 것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