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pr 28. 2023

괴물같은 '돈 중심 사회'


요즘 우리나라에서 '돈 많이 버는 것'에 대한 이슈가 다른 모든 이슈를 하찮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 시장에서도 꽤 이례적일 정도로, 오로지 돈 버는 방법과 관련된 책들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인문학이나 소설, 에세이 분야 책들이 크게 유행하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느낀다.


뚜렷할 정도로 '돈 많이 버는 것'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폭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에 대한 결핍이 심하게 때문일 듯하다. 욕망은 대부분 결핍에 상응한다. 돈에 대한 결핍이 매우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이에 심각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그만큼 돈에 대한 욕망, 관심, 이슈가 온 사회를 뒤덮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결핍과 욕망'에 대해서는 항상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진짜 결핍'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 결핍'이다. 그러니까 먼저 우리 사회는 돈에 대한 진짜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돈, 재테크, 자기계발에 대한 관심은 거의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층, 그러니까 중위연령 이하에서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실제로 돈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폭등에 뒤통수 맞은 듯 얼얼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울 기준으로 최고가 정도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돈으로, 지금은 중저가 아파트 정도를 살 수 있다. 자산 가치에 천지개벽이 일어나면서, 가만히 있던 사람들은 다 '벼락거지'가 되었다는 자조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물가 상승, 금리 인상까지 겹치니 누구 하나 '짜친다'는 느낌에서 해방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탈출시켜줄 어떤 기적을 바라며 '돈 버는 법'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이런 수요를 정확히 읽어낸 사람들은 자기 말만 믿으면 수익을 10배 높일 수 있고, 매달 천 만원씩 자동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자기만 따라서 투자하면 앉아서 매년 2배씩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짜 결핍'도 무시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 등 SNS나 각종 방송에서 '상류층'의 삶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향평준화된 이미지'에 노출되었다. 이런 이미지의 노출은 상시적인 '결핍감'으로 돌아온다. 흔히 말하는 상박감, 즉 상대적 박탈감의 일상화를 만든다. 이런 상태에서 내 삶, 내 일상은 항상 결핍된 것처럼 느낀다.


심지어 그런 상향평준화된 상태에 도달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큰 매혹이다. 당장 나도 카드 할부로 호캉스를 가거나 오마카세를 즐기거나 화려한 해외 여행을 가는 게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조금만 더 '기회를 잡으면' 이런 소비를 일상처럼 누리는 어떤 인플루언서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도달 가능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야말로 가장 유혹에 취약한 상태다.


이처럼 돈에 대한 '진짜 결핍'과 '가짜 결핍'이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2023년 대한민국 사회에는 돈에 대한 관심이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면서, 화이트홀처럼 다른 모든 관심을 튕겨내는 괴물같은 '돈 중심 사회'가 되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우리 시대에 특히 문제되는 건 일확천금에 대한 유혹과 그런 유혹으로 만들어지는 거대 산업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삶이란, 꾸준한 노동과 점진적 성장, 그리고 오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면서 이어가는 무엇에 가까울텐데, 근래 세계관은 한 순간의 기적, 기회, 폭등, 일확천금에 모두가 뛰어들어야만 할 것 같은 초조, 불안, 강박을 용량 초과 상태로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이런 상태가 지속 가능한 삶,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상황인지 의문이다. 개개인을 이런 상황으로까지 내몬 사회와 문화에도 매우 심각한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나아가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회와 문화랑 어떻게 매일 싸우면서,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삶의 태도를 지켜낼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몰락이나 절망은 너무 가까이 있고, 희망은 너무 멀어서 도달 불가능한 별처럼 화려하게 빛나고만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