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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04. 2023

<성난 사람들 beef> 리뷰 : 증오, 그리고 이해

성난사람들beef 포스터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BEEF>를 보는 내내 생각했던 건 '삶의 불안정성'이었다. 겉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이거나, 심지어 완벽해 보이고, 나아가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어떤 인생들이 알고보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요즘 변호사 일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사건에 휘말리거나 인생이 급격한 실패나 몰락으로 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더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의 현실이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우리는 일종의 빙판 위에 살아가는 것과 비슷해서, 잘못하면 내가 발디디고 있는 빙판을 부숴버리거나 바다에 빠져버릴 수 있다. 단단하게 삶을 일궈나간다고 믿고 있지만, 그 삶의 기반이라는 건 너무 쉽게 파열되고, 나는 어느덧 조각난 빙판 위에 둥둥 떠있거나, 바다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증오'에 사로잡히는 경우라 생각한다. 우리의 이 불안정한 삶, 혹은 불완전한 삶,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자주 나의 희망과 현실이, 욕망과 결과가 어긋나기 마련인 이 삶에서 어떤 '불편한 에너지'를 축적하게 된다. 즉, 관념과 현실의 불일치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분노의 에너지랄 게 있다. 이 에너지는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증오할 대상을 찾아내어 쏟아붓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분노사회>에서 깊이 다뤘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증오할 대상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증오사회에 살고 있다. 때로 그 대상은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 모든 증오를 퍼붓기도 한다. 어떤 집단을 혐오하면서 그들 때문에 내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믿는다.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망쳐졌다고 믿는다. 증오하는 사람은 그 증오의 대상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의존적이고 도착적이다.


<성난 사람들 BEEF>에서는 이러한 증오가 어떻게 삶을 폭로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증오가 망친 삶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미 부숴진 삶이 어떻게 증오로 폭발하는지를 보여준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남주인공은 자살을 하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믿는 삶의 이상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고, 균열되는 현상이고, 분노와 증오가 싹트는 환경이다. 그러다 그들은 마주치게 되고,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아붓기 시작한다.


이야기 내내 온갖 일들이 벌어지다가, 그들이 종국적인 화해랄 것에 이르는 것은 '죽음' 앞에서다. 이제 곧 죽음을 예감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털어넣고 서로를 이해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서로를 연민하고 이해할 용기를 갖게 된다. 그 전까지는 "너를 절대 이해할 수 없어!"라고 외치며 총까지 겨누던 사이였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싫었던' 것이다. 이해하고 용서할 요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보다 그저 증오의 에너지에 사로잡힌 채 끝까지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곧 죽을 마당에, 더 이상 그런 증오에 대한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냥 솔직하게 자기의 부서짐, 불완전함, 누구도 옳을 수만은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다. 그리고 또 알고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증오에 대한 처방은 이해다. 혐오에 대한 해독제는 이해다. 분노와 미움의 반대편에는 정확히 이해가 있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잊음'이 끊임없이 강조되기도 한다. 과거의 어떤 상처는 잊지 못하면, 개미지옥처럼 끊임없이 끌려들어가는 구덩이가 된다. 니체도 말했다시피 망각은 삶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태도이다.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삶을 원한다면, 반드시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과거의 어떤 습관, 기억, 관념 같은 것을 잊어야 한다. 잊음의 자리에만 시작이 있다. 


결국 우리는 이해하고, 잊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삶의 수많은 순간에, 이해함으로써 받아들이고, 잊음으로써 극복하고, 그 자리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삶의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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