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당신의 일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들과 멀어지지 마."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대사였다. 영화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지며, 한 인간의 전기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람들마다 인상깊은 측면은 달랐을텐데, 나는 계속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들이 눈에 밟히듯 들어왔다. 오펜하이머와 동료들, 그를 지지한 사람, 그의 적들, 그가 사랑하거나 그를 사랑한 사람, 그리고 그가 죄의식을 떨쳐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깊이 와 닿은 부분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고 펑펑 울어 버렸다. 영상에서는 루마니아의 한 마을에서 두세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15m짜리 관에 빠져 있었다. 구조대원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땅을 파고 관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고 하지만, 관은 직경 30cm 수준이어서 어른들은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2시간이 넘게 흐르며, 아이의 울음 소리도 그치고 부모는 절망에 빠지기 시작할 때, 동네의 14살짜리 소년이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 소년은 평소 알고 지내던 아이가 빠져 있는 걸 보다 못해 자기가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한 어른은 자신이 아닌 그 어린 소년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안타까운 듯 속상해 했고, 수십명의 어른들이 둘러싸 소년에게 로프를 감아주고 당겨주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소년은 깊은 관 속으로 머리부터 들어가 아이를 꺼내 온다. 그 마지막 순간, 온 동네 어른들이 아이와 소년을 끌어안고 공명할 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오펜하이머도 그렇지만 인간은 본디 누구나 오만한 데가 있고, 세상은 더 우리에게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각자도생을 가르친다. 그러나 인간은 사실 서로 걱정하고, 연민하고, 함께하며, 지지하도록 만들어진 건 아닐까? 나는 한 인간이 오직 개인적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한 여정에 감동하지만, 그런 걸 보고 울지는 않는다. 내가 울 때는, 거의 한 인간이 타인을 위해 위대한 용기를 내거나,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서로나 그 누군가를 위해 애쓰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오펜하이머의 여정에서도 몇 가지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대단함, 명성, 그의 시대가 온 한 시절에 대한 묘사, 개인적인 천재성과 성취의 여정, 그런 것들은 내게는 오히려 감동을 다소 반감시키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보다는, 결국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놓치 않으려 하고, 자기의 일에서 '타인'을 발견하며, 죄책감을 알게 되는 과정, 그래서 자기와 타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어떤 감각을 열어가는 딜레마적 여정에서 더 많은 걸 느꼈다.
오펜하이어의 목에 매달이 걸릴 때, 나레이션은 아인슈타인의 말로 이루어진다. 그 때, 아인슈타인은 잊지 말라고 한다.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은 혼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주인공은 역시 각자 삶의 주인공인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있어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구한 소년이 주인공이 될 때, 그것은 그 소년의 용기와 마음에 눈물 흘려주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사실, 다른 모든 주인공들을 붙잡고 바라보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걸 아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그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기도 해야 한다. 삶이란, 결국 서로 이해하고 이해 받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 이해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중하여서 이해하고 이해받은 순간들은 보물처럼 간직해야 한다. 삶이란, 결국 나를 이해해줄 사람 없다면, 또 내가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타인의 용기와 결단, 죄책감과 딜레마,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자리에서, 당신과 나는 서로의 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