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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21. 2024

이성에 대한 무관심이 대세가 된 시대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 시대 이성 간 문제는 주로 증오와 적개심 차원과 관련되어 있었다. 일전에 청년 연구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구가들이 하나 공통적으로 공감한 현상은, 청년 세대의 남여간 적개심 수준이 이전에는 발견된 적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원인은 둘째치더라도, 상호 피해의식이나 증오심, 적개심이 임계점 수준에 다다른 것이 문제로 꼽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내가 느끼는 하나의 현상은, 이제 적개심의 시대도 저물어가고 일종의 '무관심'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현실의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실질적으로 부쩍 줄어든 현상이 여러모로 관찰된다. 당장 직접적인 데이터는, 연애하는 청춘 남여도, 성관계 맺는 청춘 남녀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결혼도 당연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남자는 이제 현실의 여자보다 게임이나 BJ, 유튜버 등을 더 좋아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데이트 비용 써가면서 이성을 만날 여력 자체가 별로 없다고 느낀다. 과거처럼 매력적인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돈과 시간을 쓰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피로'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 대신 집에서 롤을 2시간 하고 유튜브 보면서 놀거나, 운동 다니면서 근육 키우는 게 훨씬 편하고 즐겁다.


이는 여자도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인다. 과거처럼 남자가 차 태우고 근사한 곳에 데려다줄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여자도 남자만큼 돈을 벌고, 여자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세상 근사하고 화려한 것은 다 구경하고, 여행도 마음껏 다닌다.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화면 속 연예인과 연애하고, 쇼핑하고 원하는 취미 활동 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것만 다 해도 삶은 '채워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전부는 아니고 여전히 서로에 대한 성적 매력을 뿜어대며 유혹과 구애에 치중하고, 그것이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또한 일종의 '인싸'로 따로 분류되지, 주류라고 까지 말하긴 어렵다. 이를테면, 이성을 만나고 구애하고 가정을 만드는 게 인간의 본성과 어울리는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면, 그런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커뮤니티 등에 모여 이성에 대한 적개심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 자체도 일종의 피로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그 시간에 롤 게이머나 축구선수, 아이돌 덕질하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 채팅방에서 놀기에도 하루가 부족하다. 내일은 또 취업 준비하거나 출근하러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간신히 얻은 주말은 운동하거나 취미 생활 하고, 쇼핑다니거나 핫플레이스 찾아 다니기에도 바쁘다.


이성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인생을 걸고 서로를 책임질 만큼의 무게감을 부여하는 건 부담스럽다. 결혼하면서 양가가 얽히기 시작하는 것자체가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일일 뿐더러,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주거환경을 가지는 것도 거의 불가능처럼 느껴진다. 아이 키우고 집 사고 그야말로 어떤 '가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희생과 비용이 필요한데, 그걸 굳이 왜 해야하느냐는 것이다. 그럴 능력도, 욕망도 없다고 느낀다. 그보다는 현상태에서의 행복을 찾는 데 천재가 된 것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일종의 '위험 회피'도 짙게 깔려 있어 보인다. 남자는 여자를 건드리기만 해도 성추행으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거의 공포와 위험의식을 공유한다. 반대로, 여자는 남자를 만나는 게 각종 데이트 폭력이나 몰래 카메라, 스토킹 등과 얽힐 수 있다는 역시 공포와 위험의식을 공유한다. 서로는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고, 만나더라도 최대한 가볍게 서로의 삶과 거리를 지키는 게 최선이라는 모종의 합의마저 존재하는 것 같다.


이걸 포기라면 포기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적극적 추구라면 추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문제라 볼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나은 시대상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 현상 만큼은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 이성 간의 문제에서 위험의 부담, 각오와 용기, 강렬한 의지와 욕망, 집착 같은 건 점점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과거와 같은 당신'은 필요 없다. 과거와 같은 관계 맺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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