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이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주요 국가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은 "가족"을 꼽았다. 반면,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1순위로 "물질적인 풍요"를 선택했다. 또한 상당수 국가들이 2순위로 "직업"을 선택했지만, 우리나라는 "건강"을 택했다.
이에 대해서는 조사나 설문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해당 조사를 토대로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비판적인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 또는 배금주의에 빠져 있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고, 직업에서조차 삶의 의미를 두지 않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들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그런 분석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 다르게 보고 싶은 측면도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 한국 사람들이 가족이나 직업적인 열망과 소명을 가치 없는 것이라 믿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가치 있다고 하는 가족, 사랑, 우정, 직업적인 열정, 꿈을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돈"이 먼저 필요하다고 믿는 게 아닐까? 마치 인간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공기가 먼저 필요한 것처럼, 돈 없이는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라 느끼는 어떤 냉소나 좌절 같은 게 깔려 있는 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믿으며 지난 수십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가족조차, 결국 이 각자도생의 사회, 경쟁사회에서는 돈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무력해지는 걸 끝없이 목도해왔을 것이다. 인생에서의 꿈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꿈이라는 이름 앞에 청년들이 당했던 열정페이, 갑질사회와 노예문화,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여러 분야에서의 좌절감이 이미 너무도 팽배해 있다. 수십만명의 청년들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에 뛰어드는 건, 그들이 꿈이라는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가족이라는 것도 점점 더 경쟁문화 속의 일부가 되고 있다. 어떤 가족을 만들 것인가는 곧 얼마나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자본을 쌓아올리는 가족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되고 있다. 자식 사랑이란, 유치원생 때부터 사교육 시장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와 관련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 없으면 사랑조차 온전히 할 수 없는 사회 문화가 사람들의 무의식에 깔려 있고, 그래서 어떤 질문에도 "물질적인 풍요"부터 대답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한국의 주요 문화 콘텐츠에서 항상 등장하는 'K-신파'나 '가족애' 또는 '인류애'에 대한 폭넓은 공감이라든지, N잡러를 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경향이라든지, 정치나 인권에 대한 높은 관심 등 여러가지 요소들은 한국 사람들이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단지, 다른 가치들을 위해서 얼마나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이 사회를 통과하면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