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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20. 2024

나중은 없다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환상 중 하나는 '나중에는 그런 걸 할 시간이 많을거야.'라고 한다. 지금은 운동할 시간이 없지만 나중에는 많을 거야,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지만 나중에는 많을 거야, 지금은 먹고 사느라 바쁘지만 나중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많을 거야,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하버드 연구팀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나중의 그런 시간'은 오지 않는다.


나중에는 지금 같은 걱정거리, 마음의 쫓김, 바쁜 일들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건 정확히 '환상'이다. 보고 싶은 사람은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보고 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해내고야 마는 것이지, 무언가를 하기 좋은 완벽한 날을 기다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만나고, 그냥 하는 마음이 전부다. 나중에 해야지, 하는 마음은 없다. 그런 마음은 없는 마음이고, 가짜 마음이다.


요즘 나는 '모든 걸 지금 하는' 마음의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 있다. 나중의 더 나은 날은 없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있다. 그 중에는 아이랑 조금 더 놀아주기, 아내랑 재미있는 드라마 보기, 같은 건 물론이고, 애써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아침에 공원을 달리기, 같은 것도 모두 들어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 현장에 있는 셈이다. 언젠가 '나중에 해야지'라고 믿었던 때고 있었다면, 그 '나중'을 '지금'으로 끌어오는 실험 현장이다.


하버드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이 대부분 나이 들어서 후회하는 건 '시간'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 그때 중요하지 않는 것에 화내고 걱정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 말걸,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 시간을 더 쓸걸, 같은 것이다. 삶이 어려운 건 삶에는 양립하기 쉽지 않는 큰 과제가 두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열심히 잘 일해서 안정적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고, 동시에 후회 없이 충분히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둘 다 잘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나는 둘 다 잘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시간을 후회 없이 쓰고 싶어서, 내가 정말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의 해변으로 나왔다. 여기엔 시간이라는 모래알들이 무수히 놓여 있고, 내가 그 모래알들로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면 된다. 만들고 싶은 것들을 잔뜩 만들겠지만, 살아야 할 집이나 타고 다닐 자동차도 모래를 굳혀 만들어야 한다. 그 모든 걸 잘해내야 한다.


두 개의 공을 떨어뜨리면 안되는 이 삶의 저글링은 어렵지만, 역시 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삶의 정수와 같은 깊은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지켜내고 노후를 위한 계획도 잘 세워나갈 것이다.


다 해야하고,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걸 다 잘해내려고 여태껏 그렇게 열심히 애쓰며 살아온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갈고 닦고, 열심히 성찰했다. 이 좋은 삶을 향한 열정과 의지, 갈망과 집착을 밀고 나가야 한다. 무기력과 손쉬운 소비와 속편한 회피를 넘어서, 내가 진짜 만나야 할 당신을 만나고, 진짜 해야할 일을 하러 나아가는 의지력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대충 사는대로 살려고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좋은 삶을 살려고 나는 이 땅에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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