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pr 25. 2024

삶은 어려운 쪽으로 가야한다


삶에서 어떤 일이 어렵다거나 어렵지 않다거나 하는 건 그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 어렵다는 게 그 일이 가치 없다는 뜻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느낄 때,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일수록 그 일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쉬운 일은 그냥 쉬운 것일 뿐 가치 있는 일이라는 한톨의 증거도 되지 못한다.


이를테면, 내가 30대에 접어들어 시작했던 일들은 상당수가 내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일들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법 공부가 그랬고, 가정을 꾸리고 책임지는 일도 그랬다. 처음 직장을 다니는 일이나, 글쓰기 수업을 이끄는 일, 뉴스레터를 만들어 정착시키는 일 등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어려웠기 때문에 가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반대로 말하면, 가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어려움을 품고 있다.


어려움을 끊임없이 회피하면서 쉬운 쪽으로 가려고 하면, 삶은 정체되는 쪽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한다. 마치 운동하는 게 어려워서 집에 누워만 있다 보면, 건강도 해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려움을 딛고, 어떻게든 한 발자국 나아가면, 그것은 삶을 만든다. 그러니까 삶을 만드는 재료가 있다면, 그것은 어려움이라는 재료다. 어려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삶은 만들어진다.


바위에 분필로 쉽게 그린 그림은 금방 사라지지만, 바위에 조각칼로 새긴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란, 바로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릴케의 말마따나, "어려운 쪽으로" 집요하게 향하다 보면, 나의 삶이란 걸 만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삶이 묘하게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면, 내가 너무 쉽게 가려고 하는 쪽이 무엇인지, 반대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어려울까봐 꺼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려 한다.


특히, 어려운 것은 단순히 '힘든 것'과는 구별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단순히 매일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건 확실히 심신이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려운 일'과는 묘하게 다르다. 힘든 건 매일 관성에 젖는 것도 포함된다. 오히려 어려운 쪽으로 나아가기 싫어서, 쉬운 것에 머무르다보면 삶은 장기적으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운동하기 싫어서 누워만 있다 보면, 몸이 더 힘들어지듯이 말이다.


어려운 것은 단순히 힘든 게 아니라, 두려운 것, 낯선 것, 내가 발디뎌 보지 않아서 마냥 불안과 공포에 떨며 꺼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려운 길에 가치가 있고, 바로 그 가치를 좇아 그 길을 가야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가치'는 그 길에 들어서보지 않으면, 대개는 제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나도 모르게 '꺼리고' 있는 어려운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마 올해 들어, 내가 가장 애쓰면서 '어려운 쪽'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타인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혼자가 편하고, 혼자 삶을 만들어가는 게 편해서 그렇게 살아온 면이 있었다면, 서서히 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삶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동업은 원수가 되고 싶으면 하라는 말이 있듯, 타인과 함께하는 일의 어려움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가야할 어떤 길이 '타인'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게 무엇이든, 어려운 쪽으로 가야한다. 거기에 삶이, 가치가, 의미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