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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10. 2021

지난 몇년간 페이스북의 의미

지난 몇년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쓴 일이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 이삼년간에 얼마나 무미건조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두 권의 에세이집은 모두 페이스북의 글을 묶은 것이었고, 실제로 출판사 편집자도 내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연락을 준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책 중 특히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어느새 나의 대표작 같은 게 되었다.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몇몇 글은 쓰였을지라도, 딱히 더 빛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부산에서부터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이어오고 있는 글쓰기 모임의 맴버도 오직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모집해왔다. 그를 통해 맺게 된 인연들도 하나같이 값졌다. 그 인연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면, 그저 페이스북을 썼거나 쓰지 않았거나의 차이가 그렇게 삶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기이하게만 느껴진다.


페이스북 이전에도, 거의 10여년간 블로그를 썼지만 이렇다 할 대단한 인연이라든지, 결과물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게 있었다면, 팟캐스트였다.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분들과 소소한 인연을 이어오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가 팟캐스트라고도 볼 수 있었다. 팟캐스트를 좋아하던 어느 분이 내게 수업과 모임 주최를 부탁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으니, 팟캐스트를 하지 않았다면 아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이상하게 만들어지는거구나, 싶다.


그런데 꼭 그런 현실적인 측면의 무언가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 글쓰는 일에는 신비롭거나 구원 같은 데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글쓰기 이전에도 10권에 가까운 책을 썼고, 나름대로 어느 지면에 기고를 하거나 연재를 하는 일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도, 내게 '글'로 소통하는 사람들이란 늘 멀리, 알 수 없는 어떤 어둠 속에 존재하는 이들에 가까웠다. 내 책을 꾸준히 사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현존하는 사람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글을 쓴 뒤로는, 글쓰기를 통한 만남, 인연, 소통의 차원이라는 것을 너무도 실감있게 느꼈다. 그것은 내가 십여년간 글쓰는 일에서 쌓아왔던 고독을 묘한 방식으로 해소시켜주었고, 모든 면에서 더 나은 글쓰기를 하게 했고, 더욱더, 계속 글을 쓰게 했고, 매일의 글쓰기를 더 의미있도록 느껴주게 만들었다.


물론, 나의 사회에서의 경력이라든지, 혹은 인생에서 필요한 직업적 성취라든지 하는 것이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건 아니다. 책 출간 같은 측면을 제외한다면, 방송이나 강연과 같은 영역에서는 사실, 오히려 페이스북을 거치지 않은 어떤 루트로 연결이랄 게 이루어졌다. 페이스북은 어디까지나 '글쓰기'와 관련된 내 삶의 아주 깊고도 가장 중요한 영역 같은 게 되어 있었으나, '말하기'의 영역은 그와 완전히 별개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보다 공적인 지면에의 글쓰기 같은 것도 페이스북을 통하기 보다는, 다른 영역을 통해 연결점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내 삶의 공허감이나 구멍이 꽤나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핵심은 그것이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어떤 이익이나 이득을 얻는지와 별개로,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모든 것보다 우월한 어떤 마음의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괜찮아, 나는 계속 쓰니까,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 글이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 말해주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으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때로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문단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방송국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학계나 학회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페이스북이 있었다. 내게는 내가 쓸 이유가 되어준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고, 나는 그렇게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쓸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무대랄 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공연장이, 공연장이 없으면 버스킹 할 길거리라도, 그 길 위의 청중이라도, 그조차 없으면 온라인 속의 시청자라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글을 쓸 지면이, 그러나 지면이 없으면 자신의 블로그라도, 그조차 없으면 어느 독자들이라도 찾아다녀야 한다. 누군가는 방송국이, 방송국이 없으면 라디오나 팟캐스트라도, 그조차 없으면 클럽하우스라도, 아니면 동네 아이들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쓸 수 있는 무대는 페이스북이었다. 누군가는 원고료 쥐어주는 언론사, 이름 깨나 있는 잡지사, 널리 인정받는 문단의 지면, 유명한 출판사의 책에만 글을 쓴다. 그러나 내게 그 모든 건 일종의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나는 페이스북에 가장 중요하게 글쓰는 사람이었고, 그에 부수해서, 별 중요성 없이, 다른 곳에도 때론 글을 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삶을 다해, 마음을 다해 쏟아넣은 공간이 결국 내게 가장 많은 걸 되돌려주었다. 내가 글쓰는 사람이라 확신을 얻은 것은 유명 언론사에 글을 실었을 때도,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했을 때도 아니었다. 거짓없이 말하건대, 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매일 이곳에서 글을 쓰고, 누군가로부터 내가 쓰는 글들이 가치를 지닌다고 매일 전해들음으로써, 스스로 진짜 쓰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퍼부운 마음과 몰입과 나를 지탱하게 한 공간이 결국 나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그렇다, 사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삶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퍼부어 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무엇이든, 결국 그것이 삶을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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