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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처음부터 성공하지 않았다

by 정지우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 할만하지만, 초창기에는 흥행 실패와 지지부진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웃집 토토로>만 하더라도, 극장 수입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토토로가' 유명해진 건 이후 DVD와 TV 방영에 이르러서였다. 그나마 이 때부터 지브리의 재정은 좋아졌지만, 그 이전의 작품들도 줄줄이 '흥행 성공'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초기작인 <루팡3세>은 흥행에 참패한 작품이고, 이후에는 하야오의 영화 기획은 줄줄이 거절당해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이후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어느정도 히트했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 역시 극장 흥행이 미비했다. 더군다나 하야오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까다로운 워커홀릭에 가까워서, 한 작품을 만들고 나면 스텝진이 모두 도망갈 정도였다고 한다.

지브리는 작화를 엄청나게 꼼꼼하게 그리는 편이라, 한달에 최대 5분 정도의 영상밖에 그려내지 못했다고 한다. 가성비와 효율성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제작방식이었다. 흥행 성적이 지지부진해지자 배급사로부터 "미야자키 감독도 이제 끝났군."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계속 만화를 만들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은 즐겁지 않다. 괴로운 작업이다."라고 하며, 만화 만드는 일은 즐겁기 보다는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일을 왜 계속 했을까. 그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상업주의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데 동요치 않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모르면 몰라도, 그에게는 그 나름의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신념, 어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이 세상에 가장 비효율적으로 가장 중요한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그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브리 작품들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마저 든다. 붉은 돼지,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없는 지구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적대와 증오와 절망 보다는, 화해를 가르친다. 자연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가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나는 지브리를 보며 세상을 꿈꾼 소년이었고, 여전히 지브리에 빚지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살만한다는 것, 이 세상은 사랑할 만하다는 것,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야오는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절망 보다는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은 너도 나도 효율적인 성공에 미쳐 있는 시대다. 장인정신을 갖고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산다, 같은 건 어딘지 꼰대의 이야기 같다. 그보다는 스마트하게 자동수익 실현하며 손쉽게 사는 방법에 다들 현혹된다. 그러나 지금도 자기만의 신념을 지켜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힘들어도 자기의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세상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일 거라 믿는다. 그들은 계속 자기의 길을 걸어가며, 자기의 신념으로 자기의 일을 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인간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싶다.

* 그림은 사실상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흥행작이었던 <마녀배달부 키키> 캡쳐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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