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마음이 급격하게 '인문학'으로 다시 기우는 걸 느낀다. 한 때는 뇌과학서, 경제경영서 등을 꽤나 재밌게 읽었는데, 갈수록 삶에 필요한 본질적인 사고가 인문학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최근 ai 발전이나 기후변화 등으로 미래 위기에 대한 담론들이 폭발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기댈 수 있는 건 인문학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더 절실히 대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최선을 다해 기후위기를 막고자 애쓰고, 기업가들도 ai를 활용해 나름의 미래를 개척해갈 것이다. 그 영역은 그것대로 중요하고 공고하여서 그들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삶의 돌파구를 찾는 일이다. 유한한 인간의 삶, 그리고 위기가 오는 세상,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또 앞으로 10년, 20년을 살아내고, 죽음을 맞이할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동양고전에서 서양 현대사상에 이르기까지, 요즘 나는 다시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런 세계는 20대의 내가 푹 빠져 있던 세계인데, 40대를 맞이하며 다시 토끼굴에 떨어지듯, 이 인문학의 세계에 떨어져 들어가는 걸 느낀다. 신영복의 <강의>에서부터 지바 마사야의 <현대사상입문>을 읽으니, 그 시절의 성찰과 마음들이 새록새록 다시 올라온다. 읽을 책들을 쌓아놓고 있다.
인문학의 힘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급변하면서 폭풍같이 몰아쳐도, 그 모든 것 속에서 내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데 있는 듯하다. 앞으로의 10년간,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세상을 더 뒤흔들 것이고, 기후위기와 인구소멸도 심화되어 우리나라에도 심대한 타격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누군가는 강원도에 땅 사러 갈 수도 있고, ai 주식을 구매하며 대처할 수도 있다. 그 모든 대처가 무의미하진 않지만, 그 가운데서 인문학은 보다 삶의 본질을 보게 하고, 그러한 본질에 집중하게 한다.
가령,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 안의 충동을 조율하면서, 내가 이 삶에서 펼치고자 하는 나의 진실을 찾아갈 것이다. 역시 인간에게 타인의 존재가 가지는 그 본질적 중요성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을 것이다. 소로우가 삶의 진실을 찾아 호숫가로 떠나고, 장자가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며 삶의 본질을 고민하던 일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10년에도 유효하다. 나도 내 삶의 진실, 더 본질적인 삶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을 것이고, 그럴 때 방향키는 인문학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쓴 <ai, 글쓰기, 저작권>에서도, 사실 1부를 쓰면서 제일 즐거웠다. ai 시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찾아야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역시 인문학적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내가 사랑한 문학인, 철학자들이 한 명씩 생각하고 피어오르는 게 느껴져서, '인문학책 쓰는 재미'를 느꼈던 부분이었다. 그 때의 자유로움을 맛보고, 앞으로도 '인문학적 사유의 자유로움'이 있는 글을 더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쓸 생각이고, 쓰고 있다.
인문학적 자유로움이 있는 글쓰기와 창작의 여정에 다시 발을 내딛는다. 이 여정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정 중 하나이다. 가장 즐거운 글쓰기를 그렇게 이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