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위기와 ai 시대의 리터러시
'문해력 위기' 이슈가 한창일 때, 나는 문해력 문제의 핵심은 어휘력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의지' 자체가 사리진 데 있다고 쓴 적이 있다. 한자어 어휘를 하나 더 알고 모르고는 사실 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입장'이라는 것을 점점 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세태가 일종의 '이해심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와 다른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이유는 알고리즘의 강력함일 것이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5, 6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본다. 그런데 SNS를 보든 유튜브를 보든, 대부분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 내 입맛에 맞는 것들만을 본다. 나와 같은 취향, 입장, 주장만 추천되고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나를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싫어요'로 치워버리고, 구독 취소하고, 악플을 단 다음 차단해 버린다. 어릴 때부터 이런 '내 뇌를 해킹'하는 알고리즘에 익숙해지면, 나와 다른 생각, 입장, 관점 자체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종의 리터러시 위기다.
아무리 내 나름의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고 마이크대고 소리쳐도 '처음'부터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고 튕겨져 나온다. 서로는 서로의 '입장'을 먼저 확인하고, 다른 입장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심지어 요즘은 그야말로 chatGTP 시대 아닌가? 어떤 의견이든 논리적 허점, 단점, 결점을 분석해달라고 하면, 심층리서치로 논문 수준의 비판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타인의 입장은 쳐내고, 내 입장은 강화하고 합리화하는 게 쉬워졌다. chatGTP한테 물어보자. 내 의견을 훨씬 강화하고 보충할 논거를 20개 만들어줘. 역시 내가 옳다. AI 시대는 극도의 자기합리화 시대다.
그렇기에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종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AI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태도가 사실상 전부다. 내가 내 입장만 계속 강화하고, 상대방 입장만 멸시하고 혐오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AI는 거의 무한정 나를 위한 논리만 생성해낼 수 있다. 나는 그 우주에 영원히 갇히기 너무 좋고, 달콤하다. 알랑거리며 아첨을 떠는 AI와 찰떡궁합으로 "역시 내가 옳고, 나랑 다른 입장을 가진 것들은 다 쓰레기였어."라고 느끼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우리는 영원히 그 우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도구를 얻었다.
그러나 내가 조금 다른 '태도'를 가진다면, AI 시대는 오히려 최적의 균형으로 나를 이끌 수도 있다.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직감하고, 내 의견을 AI에게 심층리서치로 비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입장을 더 정교하게 살펴보고 이해해볼 수 있는 근거도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물론,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불쾌한 시도를 굳이 할 이유가 없긴 하다. 그렇기에 문해력 위기란, 이해심의 위기이고, 동시에 태도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문해력 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내 생각엔 너무 쉽게 조작 가능한 AI 보다는, 책을 읽는 게 더 좋지 않나 싶다. 적어도 '책 한 권' 분량으로 내 관점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읽어낼 수만 있어도, 우리 시대에는 매우 드물고 성공적인 일이라고 본다.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의 책을 진득하게 읽는다? 평생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의 책을 한 권이나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해 가능성'을 높인다. 나는 그것이 '문해력'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다들 나와 다른 남들을 이해할 의지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어하지도 않는 시대다. 죽어라 내가 옳다고 소리치고, 내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하고만 사귀는 시대 아닌가. 그럴 때, 내 입장에서 할 일은 찬찬히 집에서 책 몇 권 쌓아놓고 여러 의견들을 살펴보고 이해해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문해력 위기인 시대에, 문해력 키우는 데 몰두하며 사는 것이 세상에도 나에게도 가장 이로운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책 읽기가 세상을 구한다는 게 영 틀린 말도 아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