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토크에 갔다가 뭉클한 일이 있었다. 한 분이 7, 8년 전부터 내 페이스북을 읽어왔는데, 당시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인생의 유일한 위로가 내 글이었다고 했다. 그 때는 나도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내 기억으로는 내 일상을 견디기 위해 썼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버티기 쉽지 않은 이 날들을 버틸 수 있을까, 매일 마음과 싸워가면서 한 자 한 자를 채워넣던 시절이었다.
그 분은 내가 쓴 글들을 필사하기도 했다면서 보여주었는데 200편 가까이가 저장되어 있었다. 나로서는 그 시절 무슨 글을 썼던가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데,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내 글이 닿아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어딘지 뭉클해졌다. 지금도 나는 글을 매일같이 쓰고는 있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어떤 구체적인 위로를 준다고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글이야 그냥 쓰는 건데, 누군가에게는 매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닿고 있다는 게,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살아가다 보면 글에 대한 찬사 보다는 악평 쪽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대략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예를 들어, 수험생 시절 썼던 글만 하더라도, 내가 작가이면서 왜 작가로만 살지 않고, 로스쿨 다니면서 글 썼다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글을 쓰다 보면,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당연히 좋은 반응 못지 않게 그닥 좋지 않은 반응들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좋은 기억'은 쉽게 사라지고, '나쁜 기억'은 오래 남아 내 글이 과연 그렇게 의미 있나 싶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라는 것은 항상 엄청난 효능감을 느끼며 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그냥 하는 행위 같은 것이 된다. 내 글이 매번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느낌 보다는, 그냥 묵묵히 내 할 일 한다는 느낌으로 써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내 글이 필요했고, 좋았고, 의미 있었다고 말하는 '실물 인간'을 눈 앞에서 만나면, 더 신비롭고 놀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그저 혼자 쓰고, 혼자 마감하고 있을 뿐이니까. 이게 사람이랑 직접 연결되는 일이라는 '실감'은 좀처럼 못 느끼는 것이다.
요즘에도 몇 권의 책 집필에 몰두하느라, 사람들을 만나기 보다는 주로 혼자 글쓰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이럴 때면, 세상에는 나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대로 영원히 혼자 섬에서 글쓰는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어떤 작은 확신들이 마음 속에서 점점이 빛나는 걸 보게 된다. 그것은 이 나날들의 몰두가 언젠가 또 값진 연결로 이어지리라는 믿음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달, 그리고 연말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연달아 낸다. 글쓰기로 내가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정말 철저하게 실용적인 책을 한 권, 반대로 글쓰기와 글쓰기모임, 북토크 등을 통과하면서 글쓰는 삶의 여정이 어떻게 삶의 깊이와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에세이집 한 권이다. 가을에 어울리는(?) 완전 T스러운 책이 나오고 나면, 겨울에 어울리는(?) 완전 F스러운 책이 나올 예정이다. 다가오는 선선한 계절, 글쓰기로 이어질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그 때까지, 역시 나는 나의 할 일을 한다. 매일 홀로 키보드를 두드림으로써, 그 누군가의 마음 역시 두드리며 노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