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부모님 속이고 몰래 서울에 갔던 이유

by 정지우

고등학생 시절,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 문제집을 사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몇 만원인가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에게도 집안에 일이 있어서 조퇴해야 한다고 말하고 학교에서 일찍 나왔다. 그리고 교복을 입고 그대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 창구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마음은 긴장과 초조로 가득해서, 어딘지 들뜬 마음이 되었다.

당시 서울에서 지하철을 제대로 탈 자신 같은 건 없어서, 남은 돈을 몽땅 털어 택시를 탔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게 내가 처음 가본 예술의 전당이었다. 나는 전시회 안내에 따라, 2층인가 3층인가를 올라갔다. 그리고 당시 여러 작가들이 모여 열었던 합동 전시회장 안을 돌아다녔다. 내가 찾는 작가가 있었다. 나는 그 작가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난생 처음으로 혼자 길을 떠난 것이었다.

끝이 없는 것 같은 그림들과 사람들 사이를 헤매다가, 나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작가를 보았다. 그를 향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그 작가는 내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 거기까지 갔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무렵, 동네 문화센터에서 처음 그림을 그리 시작해서,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아 중년의 나이에 등단을 했던, 늦깍이화가였던 내 어머니를 찾아 거기까지 왔다.

중학생 때를 생각하면, 집안의 한 구석에 채워졌던 어머니의 유화 물감들과 기름 냄새가 생각난다. 그 방은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었고, 피아노 한 대와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던 창고 같은 방이었는데, 여동생과 나는 그 방을 제일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 방에 달려 있던 작은 베란다에서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피아노를 치거나 컴퓨터로 '크레이지 아케이드' 같은 2인용 아케이드 게임을 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가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가 특별하다고 느꼈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어머니는 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었고, 흔히 말하는 엘리트 화가의 코스를 걸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른 동네 아주머니들처럼 취미로 문화센터를 다니며 그림을 배웠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른다고 믿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림 대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랑 미리 연습하면 1등은 따놓은 단상이었다. 내 방에는 그림대회에서 받은 상장들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미술학원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배운 그림 실력 덕분이었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어느 날 정말로 화가가 되었다.

예술의 전당이 뭔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상을 받은 건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고, 어머니를 놀래켜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그 일을 딱히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 부산을 갔다가 문득 어머니가 그 때 얘기를 해서 기억이 났다. "그 때 네가 엄마를 참 자랑스러워했니?"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나는 나의 어머니도, 나의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살 이후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랑도 떨어져 살게 되었고, 삶에도, 또 우리 가정에도 많은 풍파와 어려움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20대 중후반 이후 내 삶의 제1목표는 '완전한 독립'이었다. 집안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들이 누적되고, 누구나 그렇듯 나도 온전한 1인분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되어갔다. 모든 부모 관계가 그렇듯,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제 내가 의지하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거나 도와드려야 할 일이 더 많은 입장이 되어왔다. 특히, 30대 내내 나는 내가 어떻게 '기둥'이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최후의 보루다, 내가 더 온전히 삶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30대를 보냈다.

아마 대개의 삶이란 그럴 것이다. 누구든, 그렇게 자신이 바라보던 그 입장에 언젠가 서게 된다. 삶은 돌고 돌듯이, 우리에게 사랑과 책임을 물려주고,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도록 이끌어간다. 얼마 전 나는 방학을 한 아이랑 둘이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를 보러 고향에 갔다. 아이는 공항에서 할아버지를 보자 우다다 달려갔다. 할머니 곁에서 재잘되고, 마지막으로 증조할머니를 안아주었다. 그 모든 게 내가 걷게 될 길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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