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판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재테크 서적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는 장례식장과 다름 없어서, 해외 판권 라이선스 비용도 안 나온다고 한다. 해외 유명 저자의 책도 초판만 찍고 갱신도 안 한 채 절판되어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모양이다. 과거에는 초판 3000부 정도면 겸손하게 시작하는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초판 2000부를 찍어도 소화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한다.
확실히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초유의 관심사는 '돈'이 된 것 같다. 이는 단기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거대한 문화적 변화처럼도 느껴진다. 가령, 내가 어릴 때(벌써 30년쯤 전이다)를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항상 돈 자랑을 주의하라고 했다. 명품 로고가 박힌 옷도 사주지 않았다. 만약 주위에서 너무 명품으로 치장하거나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은근히 골 빈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겉으로 부를 내보이지 못하면, 무시받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돈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돈을 쫓는 게 가장 중요해졌고, 나머지 것들은 덜 중요해졌다. 늦은 밤, 인문사회서를 읽는다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 시간에 재테크 서적 읽고 차트 잘 봐서 레버리지 투자 잘하면 모두의 부러움과 주목을 얻는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식은 쌓아봐야, 'AI 딸깍' 앞에서 아무 힘 없이 주저 앉는다. 평상시 대화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지식이나 지혜를 묻기 보다는, 서로를 앞에 앉혀두고 같이 'AI에게 물어보자'고 한다.
굳이 책을 읽어야 할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이유들은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들은 AI에게 물어보면, 책 한 권을 몇 주에 걸쳐 읽을 필요 없이, 아주 깔끔하게 요약해준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굳이 돈 들여서 사볼 바에야 AI에게 핵심 내용 요약해달라고 하면 된다. 대신 책 사볼 돈으로 금 ETF를 하나 사는 게 낫다는 게 우리 시대의 상식이 되어간다. 효율의 극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만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까? 가령 책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100분 토론에 나와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걸 열심히 경청하는 시대가 올까? 그렇기 보다는, 아마 토론도 별로 의미 없는 시대가 오고 있지 않나 싶다. 석학이라는 사람 앞에 앉혀놓고, 그가 하는 말을 AI한테 다 옮긴 다음, 반박 논리를 계속 생산해달라고 하면, 아마 석학도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이기고 진다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모든 의견은 상대화되고, 남는 건 역시 '돈' 같은 물질 밖에 안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대에도 왜 계속 하여 '읽고 쓰기'를 고집할까. 나는 어제도, 세상 사람은 아무도 관심 없는 리처드 로티의 두꺼운 철학서를 읽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너무 재밌기 때문이고, 읽다 보면, 도저히 '효율적 지식 습득'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총체적인 나만의 시각이 쌓이는 그 보이지도 않고 비효율적인 경험은 아무래도 책 읽기 외에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험의 중독성이 좋아서 또 책을 읽게 된다. 내가 이 세상을 나의 시선과 정신과 관점으로 장악한다는 그 느낌이 좋아서, 역시 계속 책을 읽는다.
아마 그런 걸 설득해서,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지는,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도 있다면, 역시 온갖 재밌는 것들을 쫓는 단기적 도파민의 세계나 눈에 보이는 효율과 물질에만 집착하는 삶 보다는, 이 세계를 조금 더 깊은 관점에서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볼 줄 아는 정신이다. 나는 그것이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에는 분명 깊이라는 게 있다. 내가 믿는 건 삶에 깊이가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