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같이 보면 이혼의 위기에 처한다는 영화 <만약에 우리>를 아내랑 같이 봤다. 일종의 '전남친 전여친'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그런 내용에 동요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했다. 전여친이라고 해봐야 너무 아득한 옛날 일이고,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의 모든 사랑은 리셋되어 버렸다. 아예 사랑에 대한 개념과 존재 자체가 달라져 버려서, 그 이전에 했던 것들은 정말 아득한 어린 시절의 다소 다른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를 외치며 "우리가 이랬다면 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절규와 의문을 품는 남자에 잘 공감이 되지 않았다. 물론, 결혼하고 아이까지 키우면서도 과거 인연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 <비포 선셋>도 딱 그랬으니 말이다. 심지어 과거 사랑을 잊지 못해, 소설까지 쓰고, 그 소설을 읽고 여자가 찾아오게 만들어 불륜하고 이혼하는(...) 현대판 위대한 개츠비 같은 이야기였는데, 생각해보면, 청년 시절에야말로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이야기에서 하나 울림이 있었던 건 "너는 정말 잘 되거야." "너는 정말 행복해질거야."라고 말해주는 그들의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순간이었다. 누구나 청년 시절, 또 그 이후의 시절에도 힘든 현실의 굴레에 빠질 때가 있다. 나도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다. 내 꿈은 작가였는데, 마치 게임을 만들면서 허무맹랑한 꿈을 좇는 자기 자신에 절망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꼭 내 청년 시절 이야기 같았다. 수십 번 공모전에 떨어지고, 책은 잘 되지 않고, 작가로서 꿈을 접고, 취업 준비를 하며 살던 그 시절이 많이 오버랩되었다.
사실, 아내를 만났던 서른 즈음에도 나는 원룸에 사는 일종의 백수이고, 취업준비생이었다. 책을 쓰고 있다곤 했지만, 책 팔아서 버는 돈은 1년에 500만 원은 됐을까? 나 자신의 무능감에 몸부림칠 때였다. 항상 불안하고, 나를 자주 미워했다. 그 때 습관 중 하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머릿속으로 '내 배를 가르고 할복'하는 상상을 하는 거였다. 그에 비해, 아내는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고, 나는 자격지심에 자주 도망칠 생각도 했다. 취업도 수십 번 떨어지고, 로스쿨도 떨어졌다. 사랑은 모든 게 안정되고, 성공하고, 자리잡은 다음에 해야 한다, 같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시절에, 너를 믿어, 너는 잘 될거야, 하고 들었던 어떤 말들은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연애 초기에 아내가 내가 하던 대담회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아주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말을 너무 잘 한다고, "정지우를 국회로!"라며 장난스럽게 외쳤던 순간이 있다. 내색은 별로 안 했지만, 나는 나를 그렇게 좋게 보아주는 시선 하나로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다. 어쨌든 수렁에 빠져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지만, 그 수렁에서 기어 나올 때쯤에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미 전여친이 된 아내랑 살고 있는 입장이다. 그게 다 지난 10년간 우리 삶에 묻어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인 은호와 정원의 관계 막바지 쯤에 우리는 만났고, 그 시절 그대로 같이 지하철을 타서 손을 붙잡고 나아갔다. 전전여친들은 아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다들 아득히 멀어진 이야기를 어릴 적 소꿉장난 정도로 기억하며, 새로운 사람 만나고, 누구는 아이 낳고, 새로운 인생 잘 살고 있겠지. 설령 마주치더라도 딱히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를 외칠 일은 아무래도 없을 듯하다.
영화 <어바웃타임>을 보면, 시간을 되돌리는 남자가 더 이상 돌리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건 아이의 탄생이라는 삶의 결정적 순간을 지날 때마다이다. 어느 결정적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삶에 더 이상 만약을 물을 일이 없어진다. 그 이후 모든 것에 전적이 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세계에 살게 되기 때문에. 이건 혹시라도 아내가 이 글을 읽을까봐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정말이다.
* 사진 - <만약에 우리> 캡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