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잘하는데 문법을 못해요’라는 말의 현실
이 연재를 쓰는 동안에도 나는 반복해서 같은 말을 들었다.
“영어는 잘하는데 문법을 못해요.”
1화부터 7화까지,
초등과 중등 사이에서 아이들이 흔들리는 장면을 기록해 왔다.
이번 글은 그 흔들림이
가장 자주 언어로 드러나는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영어는 잘하는데 문법을 못해요
대치동에서 15년 동안 영어 수업을 하며
최상위반, 특히 리터니 학생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영어는 잘하는데 문법은 못한다니,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언어를 문법, 듣기, 리딩, 쓰기처럼 조각내서 본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란 원래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체계다.
한 영역만 따로 떼어 "못한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되묻곤 한다.
"그럼 너는 한국어도 말은 잘하지만, 글은 못 쓰는 거니...?"
언어 실력은 영역별로 분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안다.
나 역시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1 때 호주로 유학을 갔다.
'국민학교' 시절엔 영어 과목 자체가 없었고,
"How are you?"를 중학교 때 처음 배웠다.
그러니까 내 영어 공부는 사실상 고1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래서 한국식 문법을 제대로 배운 기억이 거의 없다.
처음 한국에서 영어 문법 수업을 준비하던 날,
'대명사'라는 단어를 보고 네이버에 검색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성인이었지만,
문법 교재를 펼치면 한자어 용어들로 가득한 낯선 세계를 마주했다.
'관계대명사', '분사구문' 같은 단어들은 언어가 아니라 암호처럼 느껴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영어를 "언어"로 익혔는데,
갑자기 한자 투성이의 문법 용어가 등장하니
언어가 아닌 수학 문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문법 용어는 배우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무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이들은 이미 언어 안에서 규칙을 체득해 온 존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규칙들
—즉, '이미 알고 있는 약속들'을 의식 위로 끌어올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리터니들과의 문법 수업은
일반적인 개념 → 문제풀이 → 말하기/쓰기의 순서가 아니라,
말하기/쓰기 → 개념 → 문제풀이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미 몸에 밴 언어를 먼저 떠올리고,
그 뒤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결국 영어는 어느 한 영역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법, 리딩, 스피킹… 각각이 아니라
그 사이의 ‘연결’을 배워야 진짜 영어가 된다.
“영어는 잘하지만 문법은 못한다” 는 말 뒤에 스스로를 숨기지 말자.
아이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 감각 위에,
규칙을 ‘가르치는’ 대신 ‘발견하게’ 해주자.
그때 비로소 영어는 아이들의 언어가 된다.
“영어는 잘하는데 문법은 못한다”는 말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은 ‘설계되지 않은 학습 과정’의 결과다.
다음 글에서는
대치동에 많은 아이들이 '학원 유목민'이 되는 이유와
유목 생활의 현실에 대해 들여다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