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 유목민

학원만 바꾸다 놓치는 골든 타임

by 양지우

수업 쉬는 시간, 아이들끼리 까르르 웃으며 나누는 대화가 귓가에 들어왔다.


A: “너 여기 오기 전에 어느 학원 다녔어?”


B: “어… C도 다녔고, D도 다녔고, J는 한 달 다니다가 끊었어.”


A: “어?? 푸하하… 너 왜 이렇게 학원을 많이 다녔어?”


B: “나 원래 학원 자주 옮겨. 엄마가 옮기라 해서 옮길 때도 있고, 지난 학원은 선생님이랑 잘 안 맞았어.”


A: “아…”





이 짧은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B는 전형적인 대치동의 ‘학원 유목민’이다.

온라인상에는 소위 ‘대치동 로드맵’이라 불리는 학원 선택 가이드가 떠돌고, 이를 그대로 따르는 학부모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로드맵이 얼마나 주관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학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숙제량과 단어 암기량

수업 후 나머지 공부나 관리 여부

한 반의 정원

선생님이 아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주는지


여기에 더해, 학부모 본인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 역시 학원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기준들 대부분이 등록 전에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학부모들은 유명 학원의 네임 밸류만 보고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내고 나서야 담임 상담을 통해 실제 수업 운영 방식을 듣고, 한 달 정도 지나서 관리 여부를 체감한다.


그러나 초등 고학년부터는 참관 수업이 없다. 수업의 질은 간헐적으로 제공되는 강의 녹화본으로 부분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관리 여부는 선생님의 피드백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그 피드백이 아예 없거나, 말과 현실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하루 수업만 듣고 퇴원하기도 하고, 대체로는 한 분기가 끝날 즈음 학원을 옮긴다.


그렇다고 아이 공부에 공백을 만들 수는 없기에, 곧바로 다른 학원이나 과외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 또다시 이동하거나, 이전 학원으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치동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학원을 자주 옮겨 다닐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선택지가 너무 많다.

대치동에서 영어 학원은 스타벅스보다도 흔하다. 이곳이 맞지 않으면 저곳으로 옮기기 너무 쉽다.

특히 영어 실력이 중상 이상이고 레벨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하는 아이들일수록 이동 장벽은 더 낮다.


둘째,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학원을 가장 많이 옮겨 다니는 집단이 상위권이 아니라 중상위권이라는 사실이다.






상위권 아이들은 ‘현재 학원 vs 다른 학원’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학원 vs 개인 과외, 혹은 스스로 공부’를 고민한다.


반면 중상위권 아이들은 끊임없이 학원 간 비교를 하며 유목민 생활을 이어간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 나름의 선택 기준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학습 방식이 무엇인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답은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이 대신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이드라인 없이 무작정 자기주도학습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학원이나 과외를 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학원에 등록하고 → 교재를 사고 → 숙제를 하고 → 단어를 외운다고


그 자체가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학교 시험 성적이든, 근본적인 영어 실력 향상이든 상관없이 모든 공부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파악하는 일’이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의 성향과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다.


수학 학원 시간, 저녁 시간, 숙제 시간 등 하루의 흐름을 함께 정리하고, 그 안에서 영어 학습 효율이 가장 높은 루틴을 설계한다.


그리고 아이의 실력을 처음 학원에 들어올 때 본 입학 테스트 점수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로 수행한 숙제의 완성도와 수업 중 직접 설계한 테스트 결과를 기준으로 다시 진단한다. 대부분의 레벨 테스트가 객관식 위주이고 서술형이 부족해, 아이의 진짜 실력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향, 생활 습관, 그리고 정확한 실력 진단을 바탕으로 한 학습 설계.

이것이 바로 학원 유목민 생활을 끝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학원을 옮겨 다니는 경험 자체가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데이터를 보면, 학원을 자주 옮겨 다닌 아이들의 실력은 대체로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의 학습 능력 향상은
학원도, 선생님도 아닌

아이 자신에게 맞는 ‘학습 설계’에서 시작된다.




같은 학원에 다니고, 같은 교재로 공부해도

유독 끝까지 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문제를 더 많이 풀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


다음 글에서는

‘왜 우리 아이는 오래 앉아 있어도 성과가 없을까’라는

학부모들의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본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공부는 재능이 아니라, 자세에서 갈린다.


—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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