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다락방이나 문간방에서 책 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를 꿈꾸는 것 같다. 박스 째 집으로 배달되는 위인전이나 전래동화, 우화집 속 수백 수천 가지의 이야기는 겨우 집 앞 골목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이에겐 그토록 낯설고 충격적인 경험이 된다. 책을 매개로 관심의 영역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있다. 공룡이나 비행기나 우주나 역사 같은 걸로. 그러나 책 그 자체에 집착할 때는 빳빳한 책등을 만지다가 첫 장을 펼치는 순간의 기대감과 제법 손에 익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찾아오는 여운 그 사이, 읽는 행위가 주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기꺼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 대부분은 향유자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창작자가 되길 꿈꾼다.
스스로 자연스럽게 그런 결심을 하기도 하겠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어린이에게는 응당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어른이 있기 마련이다. 책을 좋아하니 작가를 하라니. 공을 잘 차니 축구선수가 돼라, 노래를 잘 부르니 가수가 돼라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책을 좋아함'이 곧 '글을 잘 씀'은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어린이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어른들은 사라져 버리지만, 어떤 어린이는 그 말을 남몰래 평생의 목표로 삼고 만다. 물론 그 뒤로는 패배와 좌절의 연속이다. 관련 학과로 진학을 하든, 낮 동안에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돈을 벌다가 밤에 겨우 한 두 페이지 습작을 끄적거리든, 30살 이전에는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이 40살, 60살, 죽기 전으로 바뀌든, 그렇게 소원은 숙원이 되고 숙원은 숙제가 되어도.
프리랜서라서 한가할 때는 지루할 정도인데 왜 난 쓰지 않고 있는가. 창고에서 겨우 찾아 꺼낸 알림장의 희뿌옇게 쌓인 먼지를 털어봐도 낡고 삭고 바래서 쓰인 글씨를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다. 숙제가 뭐였더라. 뭘 쓰고 싶었더라, 세상의 불특정 다수를 향해 악 지르듯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아니, 있었나?
어제 꽃가루와 민들레 홀씨와 날파리들이 공격해 오는 탄천을 걷다가 왜 쓰지 않는가,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이 시간에 왜 쓰지 않고 휴대폰만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있는가 고민했다. 물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하나 없는 평범한 내 일상보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가십들이 매 순간 화수분처럼 쏟아지니까. 안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호기심과 흥미는 즉 '나'를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의 반증인 듯하고,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즉 쓰지 않는 이유는 나에 대한 무관심과 집중력 저하 feat. 도파민 중독, 게으름, 귀찮음, 무기력, 끈기 부족, 생각이나 사유나 철학이나 그런 비슷한 거 안 함, 체력 고갈, '되겠어?' 하는 마음 등등등등등.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봤더니 브런치는 브런치스토리로 바뀌었고, 뭐라도 쓰라고 은근히 에둘러 독촉하는 알림이 잔뜩 쌓여 있다. 여전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개학날 제출해야 하는 밀린 그림일기와는 다르니까, 그렇지만 꾸준할수록 좋다는 건 같으니까 일단 글쓰기 버튼을 클릭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