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or nothing
"내 주제에 무슨 브런치 작가야. 내가 글 써봤자 보는 사람도 없고. 다 그만둘래. 아무것도 안 할래."
뜨거웠던 작년 여름, 브런치를 제대로 해보리라 결심했던 나의 의지는 차가운 겨울밤 금세 식어버린 붕어빵처럼 향기를 잃고 말라버렸다. 그 사이 과연 나는 많이 달라졌을까? 아니, 그대로다.
아무것도 안 하니, 정말 아무것도 안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 쉬고, 먹고, 자고, 싸고, 반복하고. 본능에 충실하기만 한 삶을 살아도 무럭무럭 성장하는 시기는 유아기 때뿐이라는 것을. 나는 나를 보고, 딸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치유되기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성장하기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성취하기를.
'줍줍' 청약에 당첨되어 인생 한방에 역전하기를 잠시나마 꿈꿨던 반나절처럼, 나는 참 어리석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더라.
며칠 전,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의 일이다.
지인: "지예 씨는 MBTI가 어떻게 되나요?"
나: "저 ISFJ예요."
남편: "지예는 완전 극 J예요. 여행도 시간단위로 다 계획하고, 아이랑 주말에 갈 곳도 미리 다 찾아놔요."
지인: "와, 그럼 지예 씨랑 다니면 정말 편하겠다. 검색 하나도 안 해도 되고. 그것도 완전 능력이야. 쉽지 않아! 돈 받아도 되겠어."
나: "아니에요, 여기서도 저만 백수죠. 저만..."
지인: "에이, 극 J의 성향이면 꼭 뭐라도 할 거야. 일 내겠어 일. 이 재능을 어쩌겠어"
의사, 대기업 사원, 중소기업 임원. 빵빵한 직장을 둔 그들 앞에서 쪼그라져있던 나에게,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지인의 한마디는 미묘한 울림을 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언어폭력과 무시가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던 나도, 사실 정말 가치가 있었던 거라면, 아까워서 어째.
나는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이런 핑계로 나를 가둬뒀던 거라면, 이제라도 나를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우울증과 더불어 얻게 된 여러 마음의 병은, 먼지가 쌓여 돌이 되고 산이 되듯, 이미 내 삶에 지배적인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병 뒤에 숨어 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나도 인정받고 싶다고.
나도 뭔가 이루고 싶다고."
말은 이렇게 했으면서 사실 내 속 마음은
'아프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아프니까, 아무것도 안 할래.'
퇴화하는 이 말들을 속삭이고, 내 무력함을 합리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되더라.
아무것도 안 하니,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
뭐라도 해야지, 잠깐의 이 결심이라도 해야지.
내일은 당근에 안 쓰는 물건이라도 올려야지.
오늘은 브런치 글이라도 올려야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