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15년, 성인이 되어 언니가 데리고 온 반려견과 함께 산 게 3년, 내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반려인으로 살아왔다. 집에 가면 항상 강아지가 날 맞아주면서 꼬리를 흔들어 주는 건 좋았지만, 언제든 짖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덤인 생활. 첫 번째 나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내 앞가림도 잘 못하고 있던 시절에 반려견과 함께 살다 보니, 못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 반려견을 데려왔을 때에는 동네에 동물 병원도 많지 않아, 내가 사는 부천이 아닌 시흥까지 가서 반려견을 데려왔다. 내가 말티즈를 키우고 싶어 해서, 엄마는 노란 전화번호부에 나온 인근 동물병원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말티즈를 입양할 수 있는지 알아본 후, 시흥에 있는 동물 병원까지 갔던 거다. 그렇게 반려견을 데리고 왔지만, 반려견에 대한 정보도 많지가 않아서 ‘애완동물’이라고 써져 있는 책을 보면서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산책을 매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집에서 반려견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반려견은 점차 짖음이 심해졌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는지도 몰라서 서로 힘들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반려견은 경계하고 짖느라 힘들고, 우리 가족은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려견이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혼자 대학원 앞에서 자취를 하기도 했고, 그 뒤에는 수련을 받느라 집에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적었다. 내 앞에 주어진 거대한 짐을 감당하느라 반려견은 뒷전이었고,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게 반려견은 서서히 건강이 나빠졌다. 새로운 병원에서 수련 생활을 시작하여 그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도 출근을 한 날이었는데, 언니에게서 반려견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얼른 본가로 오라는 소식을 들었다. 퇴근을 하고 늦은 오후 본가에 도착했을 때 반려견은 가파른 호흡을 내며 잘 움직이지 못했고, 겨우 눈을 떠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 세상을 떠났다.
반려견을 보낸 일요일 날에도 병원에 돌아와서 일을 해야 했는데, 울면서 보고서를 썼다. 한 달쯤은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계속 눈물이 났고, 본가에 가면 반려견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까 봐, 가지 않았다. 반려견은 나를 보고 가려고 토요일까지 기다려준 거 같은데, 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했다. 제대로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서 생명체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반려견에게는 못할 짓이었는지를 제대로 깨닫고 나자, 이제 반려견과 함께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언니가 유기견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를 했고, 그 의견을 꺾고 언니가 데려왔을 때에도 언니 강아지라고 여기며, 마음을 잘 주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는데 집에 강아지가 없다는 게 생경하게 느껴지고 허전했다. 그렇지만 아기를 낳고 아기한테 집중하다 보면 반려견이 뒷전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전처럼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반려견과 함께 살 생각을 접었다.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됐고, 이제 내 삶에서 아기를 낳아 키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반려견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지 귀여움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인 건지, 실제로 내가 반려견을 책임지고 키우는 게 가능할지를 생각해보는데 몇 달이 걸렸다. 친구는 좀 더 손이 덜 가는 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고양이는 강아지와 특성도 다르고,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기에 고양이에게는 마음이 안 갔다. 나는 동물들 중에서도 강아지를 유독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외부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1인 가구로 반려견과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할 수 없기에 3-4개월 정도는 유튜브 영상도 보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으며 공부했다. 반려견을 어디서 입양해오는 게 좋을지, 데려온다면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 생활패턴이 크게 변치 않는다면 하루 한번씩 산책을 하고, 강아지의 밥을 챙겨주고, 양치를 하고, 그보다 더 자주 똥오줌을 치워야 하는 일을 충분히 그리고 기꺼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나 걸림돌이 되는 건, 미래에도 내가 꾸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혹시라도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싶어서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그때도 지금도 없다.), 내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이 나라 저 나라 장기간으로 여행을 다니면 어쩌지(당장 여행을 가고 싶은 나라도 없다.)라는 생각이 드니, 반려견과 함께 하자는 마음을 접어야겠다 싶었다.
반려견에 대한 마음도 교육 분석 때 나누었다. 내가 오랫동안 이런 마음을 갖고 있던 걸 알던 선생님은 내 마음을 지지해주었다. 심리상담을 통해서든, 식물을 가꾸는 일이든 나는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일을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도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여겼던 모양이다. 앞으로 반려견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거나, 혹은 그런 상황이 발생할까 봐 마음이 계속 걸렸다면 반려견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겠지만,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는 곧바로 ‘그럼 반려견 데리고 올까요?’라고 말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꼬미는 우리 집에 왔다. 생후 2개월이 지나 우리 집에 왔을 때 너무 작고 또 작아서, 만지면 어디가 부러질까 봐 같아 조심스러웠다. 꼬미는 처음 온 곳에 어리둥절했고, 나는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그렇게 서로 낯가림의 시간을 겪은 뒤 꼬미는 몸무게는 5.4kg에 달하는 개린이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이곳이 우리 둘의 집이라는 걸 알고, 서로의 패턴을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다. 꼬미가 낑낑대면 뭘 원하는지 눈치챌 수 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귀찮게 해도 놀아주지 않는다는 걸 꼬미도 아는지, 일을 할 때는 방해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놀고, 소파에서 쉬거나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 달려와 장난이 시작된다. 서로 다른 종인 개와 사람이 이렇게까지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놀랍다. 말도 안 통하는 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서로의 감정과 요구를 파악할 수 있을까.
밥 먹고 트림을 하는 것도, 발바닥에서 꼬린내가 나는 것도 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똥을 잘 싸면 아이고 우리 꼬미가 건강하구나, 하고 기분 좋고, 다른 사람들이나 강아지들에게 짖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차분히 구석에 앉아 기다리는 걸 보면 역시 우리 강아지는 똑똑해,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밥을 잘 먹을 때도, 반려견 놀이터에 가서 다른 강아지들과 신나게 뛰어놀 때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렇게 나열해놓으니 부모의 마음과 유사한 거 같다. 부모 자식 간의 사이가 아니더라도 정말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비슷한 가보다.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준비 없이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단지 좋아하지 않는 정도를 떠나 그 사람들의 이기심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인간보다 더 큰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을 데려다가 ‘애완동물’ 취급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지만 우울할 때 나를 어떤 평가 없이 사랑해주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건, 정말이지 이 세상을 살아도 괜찮은 이유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서 사랑해주는 존재는 반려견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어떤 연예인이 자신의 이상형을 ‘자아 없는 남자’라고 표현하던데, 그런 존재야 말로 반려견이 아닐까.
꼬미와 나는 공생하고 있다. 외출을 하면 혼자 있는 꼬미를 생각해 오랫동안 집을 비우려 하지 않고,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산책을 나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 포근하고 뜨끈한 존재를 쓰다듬으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한 내담자의 얘기가 생각난다. ‘그렇게 할 시간에 집에 가서 고양이 쓰다듬으며 과자 먹고 싶어요.’ 뜨끈하고 포근하고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옆에 있고, 촉감으로 느끼며, 입에 맛있는 게 들어오는 상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이 별 거냐, 이게 바로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