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잘 살자

by 심설

외부 기관에서 연락 온 강의 제안을 거절했다. 전화를 걸어온 기관 담당자는 2년 전쯤에도 강의를 해달라고 연락을 했었는데, 그때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바쁠 때라 거절을 했더랬다.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 데에도 다시 연락을 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또 강의 주제도 이전에 다른 곳에서 했던 주제라 어렵지 않아 수락을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기관에서 원하는 강의 날짜는 내가 이사 가기 직전이었고, 이사 날까지 인테리어 공사나 대출, 이삿짐 정리 같은 이사 준비로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시간을 쥐어짜 내면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만들 수가 있겠지만 요새는 도통 그렇게까지 일하고 싶지가 않다.


절대적인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가장 여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저녁 상담이 없는 날에는 오후 5~6시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저녁 상담이 있는 날에는 오전부터 일하고 싶지가 않다. 하려고 하면 할 일은 찾을 수 있고, 일한 만큼 수입이 늘어나는 개업 임상가(이자 자영업자)인데도 적게 벌고 여유 있게 일하고 싶다. 반려견과 산책을 나가서 천천히 걷고, 저녁 9시쯤이 되면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재밌는 책을 읽다가 자거나, 때로는 예능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그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의 난 자꾸 무언가를 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나 병원 수련 중에는 주어진 일이 많은 데다가 그것을 잘 해내고 싶었고,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는 주어진 일이 과중하지 않았음에도 해야 할 일들을 찾아다녔다. 그때는 풀타임으로 일을 할 때였는데,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 집에 가면 늘어질 게 뻔하니까 카페에 들러 몇 시간 동안 전공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집에 가곤 했다. 그러지 않는 날이면 따로 개인상담 일을 맡아서 하기도 했고, 슈퍼비전을 받으러 가거나 스터디 모임, 글쓰기 수업 같은데 참여하기도 했다. 주말에도 이런저런 워크샵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일을 더 하는 생활이 즐겁고 좋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나중에 직업을 갖게 된다면, 주말 이틀은 확실히 쉬고 놀되, 평일에는 야근을 하더라도 더 많이 성취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더랬다.


처음엔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이유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 때문인가 싶었다. 20대에는 그 나이가 주는 파릇파릇한 열정과 활력이 있지만, 이제는 30대 중반이니까 덜한 건가 생각했다. 확실히 이제는 술자리에서도 자정이 되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감기고 집에 가고 싶은 걸 보면, 새벽까지 놀던 20대에 비해서 체력이 좀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열정과 활력이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중년기에 도달하고도 열정 넘치게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다녔던 대학원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있어서 정문에서 건물까지 가려면 등반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초, 중, 고, 대학교 모두 평지에 있는 학교만 다닌 나로서는 통학로의 등반이 매우 낯설고 힘들었고, 헉헉 대면서 언덕을 오를 때마다 학교를 왜 이런 곳에 세웠나 불평을 했다. 그런데 그 힘듦을 상쇄할 만큼 좋은 점은 학교 건물에서 해질 무렵 석양이 정말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연구실이 있는 수정관 창문으로는 다른 건물이 가려져 석양이나 정경을 볼 수 없었고, 수업을 듣는 성신관에 가야만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수업이 끝나면 수정관 연구실로 돌아가 얼른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발은 빠르게 걸어가면서 아쉬운 눈은 석양과 그 풍경을 좇았다. 한 시간 정도만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멍하니 저 석양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의 나도 분명 여유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석양을 바라보는 것, 올레 길을 걸으며 아무 데나 걸터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과거의 난 여유 있는 시간에서 느껴지는 행복감보다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을 더 좋아했다. 너무 성취하려고 노력하다가 탈이 난 것도 아닌데, 지금은 그저 적당히 사는 게 좋다. 성취하려고 애쓰고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보다 적당히 여유 있고 천천히 흘러가는 삶이 더 좋다고 느껴서 일 테다.


1인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직원들도 고용하고 성장해야 하지 않겠냐 말한다. 규모가 커지면 돈도 더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생기고 하지 않겠냐고. 휘황찬란하고 트렌디한 대형 카페가 좋을 때도 있지만, 동네의 작은 찻집이 좋을 때가 있다. 지금은 동네의 작은 찻집이 더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적당히 여유 있고 적당히 일하고 싶은데, 열심히 최선을 다 하는 것보다 그 ‘적당히’의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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