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_루리
살아내는 용기와 떠나보내는 지혜를 얻기를..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읽기를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나도 이 책에서 큰 위로를 선물 받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코뿔소지만 코끼리들 사이에서 자란 노든이 처음 배운 세상이었다. 루리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두 눈 부릅뜨고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 그곳을 공격해서 상처 내고 끌어내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살아가는 세상,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해 주는 그런 세상 말이다.
코뿔소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며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견뎌야 할 것임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노든은 코뿔소이기에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삶이란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를 걸어가는 것임으로..
노든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던 아내와 자식을 잃었고, 악몽 속을 헤매는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주었던 친구 앙가부를 잃었고, 외로운 길을 함께 걸었던 치쿠를 잃었다. 그리고 여럿에게 목숨을 빚진 채 태어난 어린 펭귄과 동행한다.
늙은 흰 바위 코뿔소 노든에게서 어린 펭귄은 모든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한 생명이 또 다른 한 생명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었다. 바다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어린 펭귄에게 바다를 찾아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둘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어린 펭귄은 하루가 너무 느리게 간다고 말하고, 늙은 코뿔소는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고 말한다.
노든은 코뿔소지만 어린 펭귄이 바다를 만났을 때, 바닷속을 바람처럼 빠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수영을 가르쳐준다. 아니, 그저 독려한다.
"나는 코뿔소지 펭귄이 아니라고."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친구 사이든, 연인 사이든, 부부 사이든, 심지어 부모 자식 사이든 모두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사람이기에 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모든 불행의 시작일지 모르겠다. 공통점 하나 없는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처럼, 그저 서로를 인정하고 독려하는 것이 어쩌면 전부일지 모른다.
어린 펭귄은 수많은 펭귄들 속에 노든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겁이 난다고 말한다.
"날 믿어.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불운한 알에서 태어났지만 무척 사랑받는, 행복한 펭귄이었다.
노든과도 헤어져 혼자 절벽을 오르고 올라 결국 바다를 향해갈 수 있었던 어린 펭귄의 원동력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꼭 옆에 있지 않더라도 세상 어딘가 있을, 그런 단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더러운 구덩이를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어린 펭귄은 아직 삶이라는 것이 수없이 많은 더러운 구덩이와 찰나의 아름다운 빛나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모를지라도 말이다.
안전한 코끼리 무리를 떠나 코뿔소의 삶을 택했던 노든처럼, 될 수 있다면 코뿔소가 되어서라도 바다가 아닌 안전한 노든 옆에 살고 싶던 어린 펭귄도 바다를 찾아 펭귄을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의 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이며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이 코와 부리를 맞대고 수많은 긴긴밤들을 함께했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같지 않았으나 그들은 완벽한 '우리'였다.
혼자가 된 어린 펭귄은 기어이 바다를 찾아낸다. 그 바닷속에서 노든의 몫, 치쿠와 윔보의 몫, 그런 삶들까지 짊어지고 무거운 책임으로 살아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펭귄 스스로의 삶을 가볍고 행복하게 살아내길 응원한다. 세상에서 사라져 간 노든과 치쿠와 윔보를 비롯한 많은 삶들은 그저 그렇게 새 생명에게, 새 시대를 넘겨주고 떠나가는 것이 또 그들의 몫이니 말이다.
그 펭귄의 살아갈 수많은 날들 중에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어떤 날들에,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그에게 다시 일어날 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죽어 없어진 날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늙은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가슴 찡한 스토리에서 부모가 느끼는 감동과 아이들이 느끼는 감동은 좀 다른 색깔일지 모르겠다. 부모는 늙은 코뿔소의 모습에서 그 자기를 찾아 떠나는 자식의 여정을 응원할 수 있는 지혜를, 아이들은 나 자신을 찾아 세상 속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