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춘기를 막 지나온 큰 아이도 있고, 이제 곧 그 시기를 맞이해야 할 두 아이도 남아있다. 엄마의 나이는 첫째 아이 나이만큼이라 첫 아이와 겪는 모든 일에는 서툰 게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서 힘든 것도 당연하다.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이, 걸리면 안 되는 병에 걸린 듯이 중2병, 초4병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그렇게 명명해주고 나니, ' 너는 지금 사춘기다' 말하는 것을 아이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조심스럽게 말하게 된다. 물론 나도 그랬다. 예민해진 큰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동생들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언니가 사춘기라 그런가 봐. 우리가 이해하자."
사춘기는 걸리면 안 되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나야 하는 아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이다. 그래서 엄마가 키워온 대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의 색깔을 찾아가느라 몸과 마음이 당연히 좀 혼란스러운 시기인 거다. 겪는 아이도, 주변 가족들도 모두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엄마가 지금껏 '너는 노란색이다'라고 정해준 대로 지내왔는데, 어쩐지 나는 그 색이 아닌 거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고, 그러면 나는 어떤 색인지 궁금하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그 색을 찾아가려고 엄마에게 자기도 모르게 거리를 두는지도 모른다. 자기 이야기도 잘하지 않는다. 무엇을 어찌해줘야 할지 모를 때, 그런 사춘기 아이와 같은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 책을 징검다리로 대화도 나눌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아이들 문학을 읽어보는 것만으로 이해되는 않는 아이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유아 때는 무릎에 앉혀놓고 책도 많이 읽어줬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그럴 시간도 부족하고, 글밥도 꽤 많고 내가 읽기엔 재미도 그다지 없어 보이는 책을 집어 들기 힘든 엄마들이 많은 줄 안다. 다 큰 아이와 어떤 책을 함께 읽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고민인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책들을 골라 이 매거진에 모아보려고 한다.
청소년 문학이 재미없다는 편견을 버리면 좋겠다. 어른들의 세계라고 아이들의 세계보다 굉장히 고차원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도 유치하기 그지없다. 초등학생같이 싸운다.;
많은 청소년 문학이 세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떤 청소년 소설은 그 어떤 위대한 고전보다 내 안의 어린 내면 아이에게 위로를 주기도 한다.
다 큰 아이와 멀어져 가는 그 사이에 이런 책 한 권 한 권이 아이와 부모를 이어 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