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전축을 다시 꺼내고 싶은 날
️전축이 돌아간다면—
그 밤을 당신은 기억하나요?
아주 오래전,
나는 작고 어린 마음을 가진 아이였고
어느 날, 낮게 흐르던 전축의 숨결을
처음 들은 기억이 있어요.
작고 둥근 바이닐(레코드판) 위를
섬세한 스타일러스가 스쳐 지나갈 때,
길게 뻗은 톤암이 떨림 없이
음악을 안내하던 순간,
그 소리는 마치 꿈결처럼 흘렀고,
그 사이사이로는 낮은 선율이
잠과 현실의 경계를 슬며시 흔들어 놓았죠.
그 밤, 말없이 음악을 들려주시던 할아버지 곁에서
나는 그 소리를 조금 무서워했고
또 어딘가 가슴속 먼 세계를 건드리는 것 같아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듣곤 했어요.
하지만 그날의 소리는,
지금까지도 제 마음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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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축 위의 궁전』은 바로 그 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특히 오래된 전축이나 바이닐에서 흘러나오는
조금은 어둡고 낡은,
하지만 그래서 더 섬세하고 투명한
소리에 마음이 머물곤 했죠.
그 감정은 ‘공포’보다는
‘경외’에 가까운 것이었고,
나는 그 느낌을 아이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어린 루치아의 눈과 귀를 빌려,
한 세계를 여행하듯,
음악의 깊은 방 하나를 당신과 함께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
이 이야기는
단순한 환상 동화는 아닙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역사동화’의 마음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은,
단지 예술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누군가의 삶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책에서 만난 위인들이
전쟁 속에서, 고통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되짚어보듯,
그 시절의 음악가들도
고독과 감정의 협곡 속에서
음 하나하나를 써 내려갔을 거예요.
나는 그들의 삶이,
동화 속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파가니니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자,
당대의 상상 속에서
예술과 악마성의 경계를 넘나들던 존재였지요.
그를 동화에 초대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고독, 욕망, 천재성, 두려움.
그 복합적인 감정의 결을
독자들의 마음에도 조심스레
건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이 동화를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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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가 단순한 환상이 아닌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있는 감정의
궁전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조용한 오후에
혼자 전축을 들었던 당신에게.
밤비처럼 손을 잡아주던
누군가가 곁에 있었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동화는
이미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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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전축이 다시 돌아간 이유는
오래전 접혀 있던 이야기 하나가
다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추천 음악
Niccolò Paganini – Caprice No. 24 in A minor
(Performed by Itzhak Perlman)
이 동화를 쓰며 가장 자주 떠올린 곡입니다.
라인 컨택트(Line Contact) 스타일러스가
소리골 깊숙이 들어서는 순간처럼,
정밀한 선율이
내 안의 오래된 풍경을 깨워주곤 했거든요.
그 시절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감정,
혹시 당신도 느껴보고 싶다면
파가니니의 Caprice No. 24를 들어보세요.
그 선율이,
이 동화의 마지막 문장을
대신해 줄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전축 위의 궁전』 마지막 악장이
조용히 닫힙니다.
낡은 전축 위로 피어난 상상의 궁전,
그 안에서 울리던 이야기들이
당신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저의 이야기에
조용한 반주가 되어주셨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잠시 숨 고른 뒤,
조심스레 인사드리겠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당신의 마음은
늘 잔잔한 선율처럼
저를 감싸주었습니다.
― Bloom지연
『전축 위의 궁전』은
고요한 마음 위에 놓인
상상과 음악의 소묘(素描)입니다.
한 소녀의 내면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전축의 침묵 위로 흐르는
은은한 선율처럼 엮을 예정입니다.
Bloom지연 작가의 브런치북
-『전축 위의 궁전』 발행 예정
지금 이 순간,
당신 마음에도
조용한 선율 하나
은은히 머물기를.
라이킷과 구독은, 창작자에게
따뜻한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머문 마음은 댓글에,
인연은 책동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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