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리기 전, 잠깐의 인사
― Postlude
(포스트루드 · 후주곡,
마지막 인사처럼 이어지는 여운)
무대는 비어 있었고,
빛도 천천히 커튼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요 속의 숨결 하나를 가만히 되짚었다.
아무 말 없이, 마음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 나는 루치아야.
처음엔 그냥 오래된 전축 하나였는데…
지금은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걸 보고, 들었어.
밤비랑 손을 꼭 잡고
음악의 방을 지나고
악기들이 사는 궁전에도 다녀왔지.
무서울 때도 있었지.
하지만 무섭기만 하진 않았어.
그 소리들…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거든.
밤비가 내 손을 꼭 잡아줘서
나는 계속 앞으로 걸을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음악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음악은 그냥 듣는 것도, 외우는 것도 아니야.
그건, 마음에 남는 거야.
아주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는 거야.
⸻
안녕, 나는 밤비야.
사실, 난 오래전부터 루치아의 인형이었어.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짜 친구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무서운 어둠도 함께 지나갔지.
전축 안의 세계는 참 신기했어.
빛도 소리도 감정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자체로 기적 같았거든.
루치아가 내 손을 잡아줬을 때
나는 정말 살아 있는 기분이었어.
이제 다시 인형으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괜찮아.
루치아의 방 한편에서
언제나 조용히,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테니까.
음악이 다시 들려오면,
또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인형이 가진,
아주 작은 마법이거든.
⸻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은 여러분에게,
나도 인사를 하고 싶구나.
나는 루치아의 할아버지란다.
비록 이 동화 속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루치아가 처음 음악을 들었던 날,
그 조그마한 귀를 조용히 감싸주던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에 또렷이 남아 있단다.
그래서 이 오래된 전축을,
마법처럼 그 아이 곁에 남겨두었단다.
루치아는… 정말 잘 다녀왔구나.
무서움을 용기로 바꾸고,
음악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구나.
너를 통해 이 이야기를 읽은
다른 아이들,
다른 어른들 또한
그 마음속에
음악 한 조각쯤은 남겨두었기를 바란다.
⸻
클래식 악기들의 마지막 인사
첼로:
“나는 슈만의 첼로야.
너희 마음에 울림이 닿았기를 바라.”
심벌즈:
“번쩍! 반짝! 마지막 박수는 내가 칠게!”
피아노:
“건반 사이로 감정이 흐른단다.
다시 연주될 날을 기다릴게.”
오르골:
“작지만 오래 울리는 음악…
그게 나야. 귀 기울여봐.”
플루트:
“나는 바람을 닮았어.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들었지?”
오보에:
“내 음색은 조금 쓸쓸하지?
그래도 늘 진심이었어.”
바이올린:
“혹시 너도 슬플 때,
내 소리를 찾아줄래?”
전축:
“나는 멈췄지만,
너의 마음에선 계속 돌아갈 수 있어.”
⸻
이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루치아는 학교에 가고, 밤비는 침대 위로,
전축은 다시 먼지 속에 조용히 덮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의 마음 어딘가에서
이 음악, 이 이야기, 그리고 이 밤의 기억이
한동안… 아주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잘 가.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
— 루치아, 밤비, 그리고 음악의 세계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대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
“어허, 어허!”
헛기침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어요.
모두가 커튼을 내리고 조용해진 순간,
무대 뒤편에서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인물이 천천히 걸어 나옵니다.
“내가 아직 피날레를 장식하지 않았는데,
왜 너희들만 인사하고 커튼을 닫는 거야?”
그의 손엔 낡은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무대의 모든 불빛을 삼킬 듯
깊고 날카로웠어요.
“나는 음악의 세계에서 잠시 나왔어.
내 이름은… 아직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그는
바이올린을 천천히 들어 올렸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았어요.
그의 활이 줄을 스치는 순간,
마지막 음표가 공기 속을 가르며
번개처럼 번쩍였어요.
그때,
모든 악기들이 숨을 죽이고,
밤비는 루치아의 손을 조용히 잡았죠.
마지막 한 음이 사라질 때까지—
세상은 아주 고요했답니다.
루치아,
섬세한 마음을 지닌 조용한 소녀.
상상의 문을 조심스레 여는 용기를 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
음악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밤비,
루치아가 품에 꼭 안고 다니는
부드러운 감촉의 작은 인형.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친구.
이제 루치아와 밤비는 또 다른 여정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마음 어딘가 잊고 있던 상상의 문이 있다면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도 전축 하나쯤 있기를 바랍니다.
― Bloom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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