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말을 건네다
한복 입은 소녀들.
이제 이름이 생겼다.
조선의 옥이, 일본의 마사코.
어린 두 소녀가 한복을 입고 손을 맞잡던
그날의 장면이 마치 오래된 꿈처럼,
그러나 분명하게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마사코, 이리 와 봐!“
“기다려, 옥아. 넘어질 것 같아.”
작은 웃음소리가 개울가를 타고 흘렀다.
바람에 살랑이는 저고리 자락,
햇살에 반짝이는 검은 머리칼,
징검다리를 사뿐사뿐 건너는 발끝의 조심스러움까지.
그 모든 풍경이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다.
마치 내가 그 곁에 있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묻곤 한다.
어떻게 서로 다른 말과 문화를 가진 두 소녀는
진심을 나눌 수 있었을까.
무엇이 두 마음을 이끌어
그 적막하고 거센 시대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게 했을까.
기억이 조용히 대답한다.
맑은 햇살이어서.
향기로운 바람이었고.
함께 번지던 웃음이었지.
조선의 옥이, 일본의 마사코.
작은 발끝이 닿았던 물가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 가장 맑은 곳을 적신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책장을 넘기며 낯선 이름들을 하나씩 익히고,
눈을 감고 오래된 풍경을 상상하곤 했다.
그때의 마음들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그 시절엔 어떤 향이 스며 있었고,
어떤 울림이 머물렀을까.
그런 궁금증은 나를 자꾸만 과거로 이끌었다.
어느 날, 나만의 상상 노트 한 귀퉁이에
두 소녀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까만 눈동자와 하얀 저고리.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는 소녀들.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녀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고,
어느새 그 마음을 따라
첫 문장을 꺼내보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섰다.
잊힌 시간과 마주하는 일은 고요했지만,
때로는 너무 아려서
문장을 더는 이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옥이와 마사코는 매번 나를 돌아보게 했다.
“괜찮아, 여기 있어.”
아이들의 조용한 속삭임은
나를 다시 이야기의 길로 데려다주곤 했다.
한 줄 한 줄,
나는 과거와 대화하듯 글을 써 내려갔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해 말을 건네고,
무심히 흘러간 얼굴들에 작은 이름을 붙이며
조용히 그들을 불러보았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한 장의 그림 같기도 하고,
내 마음 한 조각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 어떻게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나요?”
기억 속에서 한 장면이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소녀.
그 아이들이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왔지요.
처음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말들이 천천히 자라났고,
어느 날, 그 웃음과 눈빛이 내 안에서 조용히 스며들었어요.
나는 그것을 말로 옮기기 시작했고
동화는 끝났지만,
기억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
잊지 말라고,
그리고 잊혀지지 않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오래된 속삭임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이야기의 다음 장을 천천히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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