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 여백의 얼룩

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by 예그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건강한 것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면 병든 것이다.
도를 깨달은 자는 결점이 없는데, 자신의 결점을 결점으로 알기 때문이다.
알아차린 얼룩은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176.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남겨가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깨달음도 시간이 지나면 깨달음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생각과 경험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내가 단단해진 만큼 유연함은 부족해지고 결국 나를 모르게 만든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다.

삶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내가 아는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불안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안다는 착각으로 가득 찬 검은 종이를 보고 어떻게 세상의 길을 찾아갈지.






결국은 여백이다.



흰 종이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여백이 없이 무언가를 빽빽하게 채워버린 종이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알아차린 얼룩은 더 이상 흠이 되지 않는다'는데,

얼룩을 알아차리려면 여백이 있어야 한다.

검은 종이에도, 흰 종이에도 여백은 없다.



아는 것을 줄이고 모르는 것도 줄이는 것.

무언가를 쓰려면 하나를 지우는 것.

무언가를 쥐려면 하나를 놓는 것.



'도'에서 비우라는 말은 그런 뜻인 것도 같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쥐고 담으려고 해서 놓으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지,

결국 잘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바다가 밀물 썰물이 있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채우고 비우고의 반복 아닐까.

생명을 가득 채우고 태어나서,

결국 공허로 돌아가는 게 삶이니까.




이 책도 무언가 많이 비어있는데, 꽉 채워져 있다.

그 비움과 채움은 결국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이 생각보다 어려웠음을 인정하고,

또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스스로 읽어냈음을 칭찬하며.




이 책도, 책을 읽고 쓰는 이 글의 연재도 채우고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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