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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eon Jul 02. 2022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온 마틸드 -8-

생일도 다 하고 라파누이 체크인도 마쳤고 숙소 업무도 한시적으로 마무리가 되어 오랜만에 휴식…인 줄 알았지만 오늘 마틸드(이하 틸드)를 돕기로 한 것이 기억난다. 이번주 일요일에 귀국하는 그녀는 두 달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대형 캐리어에 짐들을 담고 그동안 서울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박스에 담아 이탈리아로 보내는 것.


박스가 꽤 커서 들고가기에는 무리라 경리단길에 있는 우체국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금강산도 식후경.

정말 오랜만에 둘이 밖에서 외식을 하기로 결정.

매운 걸 전혀 못 먹는 그녀를 위해 어떤 메뉴가 좋을까 생각하다 선릉에 있는 잇쇼우 우동집이 생각났다.

그녀는 최애인 돈까스를 시키고 나는 좋아하는 냉우동.

미소시루를 너무 좋아해 몇 그릇이고 들이킬 수 있다는 틸드. 언젠가 한국에 다시 오면 미소시루의 나라 일본에 같이 가자는 약속까지.


강남역을 지나는데 Line Friends가 보인다.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 잠시 들렀는데 그곳은 이미 그녀에게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 일이층 전관에 BTS의 캐릭터 굿즈가 들비하다. 이태원에도 라인프렌즈가 있었는데 게스트들이 그렇게 좋아했었다. 코로나로 없어진 게 아쉬울 따름.

초흥분 상태의 틸드는 RM의 굿즈를 집었다 내렸다 다시 집어 바구니에 넣었다. 어떤 기분인지 너무 알 것 같아 함께 동참했다. 뉴욕 우드버리 아울렛에 갔을 때 나도 저런 기분이었. 너무 좋아서 다 사고 싶은 기분ㅎㅎ

캐릭터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거기엔 스토리텔링이 있고 본체를 상징하며 의미를 깃들게 한다.


그녀의 마지막 쇼핑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쇼핑한 물품을 뽁뽁이에 싸서 열심히 패킹하고 내역을 적는 틸드. 박스에 붙일 딱지에 주소와 배송용품들을 열심히 쓰고 있노라니 불현듯 직원이 어느나라인지 물어 보신다.


이탈리아요.

앗… 이탈리아는 EMS 안 됩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가능하지만 이탈리아는 사회시스템이 한국과 맞지 않아 코로나 전부터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고. 완곡하게 말씀하시지만 사실 우편 등 사회 시스템이 미비해 다른 나라와의 협업이 어렵다는 이야기. 나름 선진국인 이탈리아가 그렇다는 게 믿기가 어려워 연거푸 “그럼 세르비아는요? 그럼 불가리아는요?” 물어 본다. 다 된단다. 신기할세..


아까 차 안에서 틸드의 고향인 시칠리아 섬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혹시 실례될까봐 조심스러워 감히 물어보지 않았던 마피아에 관한 것도 포함해서. 틸드는 고향 상황을 이렇게 저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했는데 시스템에 관한 부분이 가장 컸다. 그런 것들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의 지식이 짧아 미처 몰랐던 세상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소포 비용은 16만원, 한 달 이상을 예상한다. 집이 비어 있으면 다시 한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게 말씀해 주시는 우체국 직원 님. 아까의 그 시스템에 대한 불안으로 혹시라도 생길 분실이 염려된다: 박스 곳곳에 기입되는 정보들. 이 소중한 보물 박스가 무사히 한 달 뒤 시칠리아에 있을 틸드에게 잘 도착하기를 오늘 진심으로 빌었다.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내 방 침대에서 둘이 엎드려 남준이의 솔로곡을 감상한다. 내일은 틸드에게 한 달 전부터 약속했던 찜질방에 데리고 갈 예정이다. 서로의 루틴이 맞지 않아 미루고 미룬 터다. 그녀가 돌아가기 전 그 일분일초 아까운 소중한 시간들이 충만하게 채워지길 바래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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