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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eon Jul 05. 2022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온 마틸드 -마침-

나의 이탈리안 룸메이트 마틸드가 떠났다.

안 간다고 난리를 치는 걸 질질 끌고 가 인천공항에 접수시킴(농담).


4월30일 밤 연락이 닿지 않아 이태원역 4번 출구에 몇번이나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보낸 사진들을 마치 헨델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하나하나 줏으며 확인해 결국 내가 사는 집 4층까지 무사히 찾아와 문을 두드렸었다. 1층에 잠시 둔 캐리어를 내려가 같이 들어 준다고 하니 놉! 하며 이건 내 일이라며 낑낑거리며 끌고 올라온 특이했던 그녀. 마른 몸에 고집있고 약간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한 범생이 안경을 쓴 그녀와의 첫만남이다.


아주 살짝 그녀와의 한 달 살이가 괜찮을까 하는 내적의문을 가질 무렵, 방문 앞 인증샷을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순간적으로 순진무구한 해맑은 표정이 된다. 하..요것 봐라. 카메라를 내리자 예의 그 표정으로 돌아오는 그녀. 왜 한국에 왔냐는 질문에 갑자기 눈이 반짝이고 황홀한 표정으로 바뀌며 BTS 남준이에 대한 세레나데가 시작된다.

아… 알 수 없는 독특한 아이. 이것이 나의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시차에 적응 못 하고 며칠 누워만 있는 그녀가 걱정되어 서울 남준이 투어도 함께 떠나고 밖에서 식사도 하고 친구도 같이 만났다. 그녀는 떠나는 전날까지도 그녀만의 시간 속에 살았는데 내 우려와는 달리 본인이 원하는 곳은 모두 다녔고 만날 사람들을 만났고 그 와중에 본인의 작업도 모두 마쳤다. 내가 어떤 이슈로 마음이 좋지 않았을 때는 자기 옆에 앉히고 위로를…보다는 대책을 강구해 줬고 안아 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붙인 별명은 다양했는데(타인에게 별명이나 애칭 붙이는 것을 즐김), 셜록. 인간GPS. 오드리(안경을 벗으면 햅번과 살짝 비슷함). 남준마누라 등등.

머리가 상당히 좋고 집요하고 아주 논리적이며 고집이 있고 까다롭지만 비상식적이지 않고 정도를 안다. 작은 것에 쩨째하지 않고 쓸데 없는 것에 머리를 굴리지 않으며 나이에 비해 아주 성숙하다. 처음엔 나에 대해 조금은 경계를 하는 것 같더니, 박지연이라는 사람이 헐랭이고 딱히 위해를 가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친절해졌다.


틸드는 이탈리안이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몇 년간 일을 하며 영어를 더욱 확실히 습득했다. 그래서 그녀와의 대화에서는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스코틀랜드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젠 스코틀랜드의 날씨 지형 노래 민족성 이런 것들이 왠지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여기에서 보내자며 초대를 했다.


그녀의 고향은 지중해의 섬인 시칠리아, 카타니아(Sicily/Sicilia),(Catania).

어머니는 할머니에 이어서 작은 레코드샵을 운영하신다. 그녀의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언어에 대한 재능은 어릴 때부터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혼자 확신한다. 그곳에 K-pop 섹션을 두고 판매를 하라는 트렌드를 읽는 딸의 권유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어머니와의 갈등 같은 이야기는 부록.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를 몇 달간 돌보며 번아웃이 왔고 지친 자신을 위해 선택한 한국행. 처음 얼마간은 한국에 혼자 도망나온 것 같은 죄책감에 조금 속상해 하더니 어느덧 이곳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해 즐겁게 지냈다. 할머니도 더 건강해지신 것 같고 힐링 타임을 가졌으니 새 마음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너무나도 마음에 든 서울 생활이 아쉬워 한 달을 연장했고 내 집의 작은 손님방에서 매일매일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즐겁게 지냈다. 같이 밥을 지어 먹고, 순서를 정해 샤워를 하고, 세탁물을 같이 돌리고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잠이 들고.


자취를 시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이런 형태의 숙소를 시작한지는 4년이 되었고.

에어비앤비 개인실을 시작한 여러가지의 강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누군가와 한번 같이 살아 보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지내 본 것은 처음이다. 영어로만 소통해야 하는 부담스러움, 맞지 않는 루틴, 타인을 챙겨야 하는 부담감 등 불편함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느끼는 포근함과 상황마다 생기는 여러 감정돼 대처들. 그런 걸 배운 것 같다.


일요일이고 밤비행기라 여유도 있었지만 그녀의 여행을 마무리해 주고 싶어, 아니 나의 두 달의 경험을 마무리짓고 싶어 인천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게스트를 공항까지 데려다 준 것은 호스트 인생에 처음 있는 일. 나에게 사랑과 내적 경험을 줬던 그녀는 그런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수속 밟는 것을 지켜 봐 주고 출국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들어가기 직전 나를 안고 갑자기 눈물 짓는 그녀. 우리는 수속까지 굉장히 일상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있었기에 갑작스런 그녀의 눈물 젖은 얼굴이 당황스럽다. 여러가지 감정들이 올라온 것일 거다. 눈물을 닦아 주고 꼭 안아 주며 다시 오라고 말해 주었다. 마틸드를 다시 불러 하트 표시를 보내니 그녀도 화답한다.

갑자기 내 눈에서도 눈물이 도로록. 당황스럽네.

정이 들었던 누군가를 보내는 아쉬움의 눈물과 책임을 완수했다는 안도의 눈물일테지.


한동안 개인실에는 게스트를 받지 않으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것도 충전이 필요하므로.

우당탕탕 이탈리안 소녀 마틸드 숙박 완수!

끝.


Matilde Arena in Jiyeon House 2022/4/30~2022/7/3


ps) 그나저나 그녀는 나에게 남준 편지를 안기고 갔다. 나중에 펴 보니 주소지도 없고 김남준 세 이름만 있다. 하… 틸드야.. 이걸 어디로 보내라는 거니…ㅠㅠㅠ ㅋㅋㅋ 마지막까지 미션을 주는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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